그런 거다, 책이란. 늘 그런다. 너무 기대를 하면 실망이 앞서고 이 책 이거 뭐, 하며 읽으면 은근 끌리게 된다. 김별아 작가의 책을 추천 받을 때도 그랬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코드가 안 맞았다. 안 맞으면 잘 안 읽게 되는데 추천 받았다. 이건 좀 다른 것 같아. 읽어봐! 글쎄, 다른 읽을 책도 많은데 하며 계속 미루었다. 그렇게 밀린 책은 책상 위에 얌전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읽어주기만을 기다렸다. 그 책을 보면서 그랬지. 훔, 그래 오늘은 읽어줄게, 하다가 보면 그 옆에 있는 다른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밀리기를 서너 번하고서야 마침내 책을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도 참 어지간하다. 아무튼 '김별아 치유의 산행'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치유, 심리가 들어간 산행에세이. 그러니까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느냐, 던 작가가 산을 오르면서 자신의 마음속 오랫동안 묵은 상처에 대한 고백을 나눈 책이란 것. 작가는 프롤로그 형식의 예비산행이란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려와야 할 것을, 끝내야 할 것을, 죽음으로 모든 것과 이별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산을 오르고, 사랑을 하고, 기어이 살아낸다. 그 불가사의한 어리석음의 순환 고리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가?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그리하여 산행을 시작했지만 산행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극한으로 치닫는 육체적 고통 속에 더욱 적나라해지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끝끝내 보듬어지켰던 마음의 힘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란다. 

심리학을 다룬 책들은 모두 그렇다. '최초의 기억'부터 이끌어낸다. 내가 지금에 와서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이런 삶을 살았는지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자신도 잘 모르는 상처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치유 하고 싶으면 그 상처부터 끄집어내야 한다.  한데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내게 정말 어릴 때 상처가 있단 말이야? 말도 안 된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른으로 산다는 것』의 김혜남 교수가 말해준다. "누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고. 증거를 대라면,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분명 있다고 자신만만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다른 사람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분노하며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강력한 감정이 치솟아 오르면 그건 대부분 그 아이의 분노와 슬픔이다." 헉, 정말? 그런 거였나? 다시 김별아. 

그녀는 아픈 아이였단다. 몸보다 마음이 아팠고,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팠단다. 한데 그걸 인정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니 끊임없이 부대꼈고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단다. 그런 그의 히스토리를 들은 의사 친구가 내린 결론은 '소아우울증' 거의 완벽하게 그 증상과 일치했고 그제야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니 단짝 친구도 없는 외톨이였으며, 어린 시절 일기장 속엔 온통 '죽고 싶다, 혹은 죽이고 싶다'만 가득 적어 놓았다는 걸 알게 된다. 이게 그녀의 '최초의 기억'이다. 그동안 꼭꼭 숨겨겨 있던. 자, 그럼 이제 그걸 알아냈으니 어떻게 해야지? 치유, 치유를 해야지. 

책은 전반적으로 그녀가 다녔던 산행의 기록에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과거의 상처와 같이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에 잘 어울리는 다양한 책들의 문장들을 잘 버무려놓았다. 산행이라는 취향이 같지 않으면 지루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삶의 의문들을 적절히 배합하여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삶과 산은 닮은 꼴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오면서 왜, 사는 지 혹은 무엇때문에 살아가는지 던지는 의문들은 산을 오르면서도 느끼게 된다. 왜 산을 오르는 거지? 올라가서 어쩌자고? 어차피 내려올 건데...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녀의 산행을 통해 내면의 고백을 토해내는 작가를 보며 우린 우리의 상처도 보듬어 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내 삶도 그랬네. 나도 어릴 때 그런 경향이 있었지. 은근슬쩍 김혜남 교수의 말이 맞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다른 심리학 책에게도 눈길이 가게 되었다. 마침 출간된 서너 권의 심리학 책을 같이 읽으며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는 것을, 상처가 없는 척해도 결국 찾아보면 마음속에 묵혀둔 상처들이 하나씩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까닭에 이런 심리를 다룬 책들이 위안을 주고 공감을 준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일까 허구한날, 심리학 책만 들고 읽는다면 그건 정말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만 가끔 우울하거나 뭔가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할 때 읽어보면 유쾌하진 않지만 편안해지기는 한다. 지금 아픈 내 상처가 공감가는 여러 개의 문장들을 읽으며 뭔가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되니까. 그래서 치유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 것 같다. 다시 또 겪게 될 지라도 지금 현재는 치유!  

그러니, 지금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있어 짜증이 나고 불안하고 자꾸만 우울해지는 당신이라면 이 책이 아니라도 가까이에 있는 심리학 책을 한 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처럼 뭐 이런 책을? 하며 읽다가 공감의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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