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우에무라 나오미 지음, 김윤희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모처럼 일찍 일어난 날, 밥을 먹고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알래스카에서 개썰매를 모는 장면을 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어제 읽은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가 생각이 나서 시청하게 되었다. 책에 나오는 개들과는 다른 종의 개였지만 영하 56도인 알래스카의 눈 위를 11마리의 개가 하염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 개들은 보통 16km의 속도로 10시간 정도 달릴 수 있단다. 그 개가 싣고 달릴 수 있는 짐의 양은 사람 한 명과 68kg정도의 물건. 쉬는 법이 없이 지칠 때까지 달린다. 달리면서 똥을 누고 달리면서 장애물을 피한다. 사서 고생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그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말하길 닥터 지바고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 속 장면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단다다. 하지만 그가 경험한 현실은 다르다고 했다. 그렇겠지. 뭐든지 경험해보지 않은 모험은 무모하거나 멋지거나. 

알래스카의  대 자연을 배경으로 개의 시점에서 서술한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이라는 책이 있다. 1897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에 참여해 알래스카에 갔던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소설에서 미국 남부에서 편안한 삶을 즐기던 늑대개 벅이 알래스카로 끌려와서 채찍과 곤봉의 세례를 받으며 생존의 법칙을 익히고 원래 벅이 가지고 있던 야성의 본능을 깨우치며 썰매모는 개로 재탄생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북극, 알래스카든 그린란드든 눈이 쌓인 그곳을 달릴 수 있는 것은 개밖에 없다. 그곳에서의 모험은 개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부제로 붙은 '도전 앞에 머뭇거리는 당신을 위한 책'의 문구를 읽으며 이 책은 위대한 기록이며 실종된 모험심과 도전 정신을 일깨워주는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당신은 29살에 무엇에 도전했는가, 하는 해제에 나오는 문장을 읽으면서도 '아,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군. 요즘은 자기계발서도 참 독특하게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내겐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맘에 들어온 것은 바로 개들이었다. 도전이니 모험심이니 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마지막 장의 제목 밑에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라는 『핑』이라는 책을 쓴 저자의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진정한 삶의 길을 찾으려면 두 번의 여행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여행은 나 자신을 잃는 것이고 두 번째 여행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행이 내가 생각하는 여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공감이 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모험심 강한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며 도대체, 왜, 어째서, 무엇때문에, 라는 의문만 들었다. 물론 그와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이 다르고 만족감이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어쩌면 그래서 괜히 같이 고생한 개들에게 오히려 더 관심을 가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의 저자 우에무라 나오미는 천생이 모험가인 것 같다. 그린란드와 알래스카를 일주하기 전에 이미 유럽의 최고봉인 몽블랑을 단독 등반 하였고,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인물이란다.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에겐 전설로 불리는, 그래서 절판된 책이 10년 만에 다시 복간되도록 하게 만든. 그러니 가까운 뒷산에도 잘 오르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아무리 그를 이해하려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무모해보이기만 하는 나오미보다는 채찍질 당하면서 그 모진 곳을 달려야만 하는 개들에게(아, 내가 언제부터 개를 좋아했다고-.-;) 빙의가 되어서;; 

그럼에도 

나오미의 1년 2개월에 걸친 무모해보이기만 한 그 여정을 따라다니며 깨달은 것은, 무엇이든지 마음을 먹는다면 세상엔 이룰 수 없는 일이 없을 거라는 거다. 겨우 29살에 세계 최초로 5대륙 최고봉에 오른 남자라는 타이틀이 살짝 부담을 주기는 하지만 험난하다고만 생각했던 길, 아무도 해내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어내는 이들이 있으므로 인해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나같은) 사람에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해주는 것일지도. 

미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모든 책들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지만 추운 것이 싫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절대로 북극 같은 곳엔 가고 싶지 않다는, 여행은 좋아하겠으나 모험은 싫은 얄팍한 심정을 내보이며 책을 덮었다. 그러고선 한참을 생각했다. 그 어떤 일이든지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진 일의 '처음'이 주는 만족감이야말로 평생을 좌우하는 거라고. 나오미가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 고줌바캉 2봉에 최초로 등정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겠지. 문득 세월이 흘러 매킨리산을 다시 등정하는 인물이 나타나 하산 하는 길, 어느 곳에서 나오미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만화 같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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