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들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비슷한 시기에 출간한 소설집을 몇 권 같이 읽게 되었다. 책은 취향이라고 했나. 이상하게 그 소설집들 중에 유난히 잘 읽혔던 소설집이 바로 하재영 작가의 『달팽이들』이었다. 이상하리만큼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공감이 갔다. 마치 내 얘기 같다고나 할까, 내가 그리 고독한가? 나도 콤플렉스가 많은가, 그것도 아니면 학교 다닐 때 왕따를 당했나?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싶은가?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모두 공감공감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아마도 다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달팽이들』속 주인공들이 나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바라는 건 달라도 모든 욕망의 밑바닥에는 타인의 시선이 있는 거 아닐까요? 나도, 당신도, 남의 눈에 우리가 어떻게 비치나 전전긍긍하는 나약함을 욕망으로 포장하고 있지 않나요? 외부로부터 강요받는 욕망을 내면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고요? 혼자 밥 먹을 때 혼자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것은 왜일까요?" 

첫 소설 「같이 밥 먹을래요?」에 나오는 주인공의 엄마는 그랬다. "혼자 밥 먹지 못하는 사람은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 엄마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혼자 밥 먹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것이라는 점엔 공감이 간다. 나도 그랬으니까. 혼자로 살면서 혼자서 모든 것을 하면서도 여전히 혼자서 밥 먹는 것은 두렵기만 했을 때, 그건 바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으니까. 이젠 혼자 밥을 먹어도, 다른 사람이 그런 나를 쳐다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습관이 되었음에도 사실은 아직도 내 맘 속엔 나약함이 존재함으로 그녀처럼 나와 같이 밥을 먹어주겠다고 누군가 나타난다면 난 좋아할 테지. 

그럼, 혼자서 지내는 것은 어때? 표제작인 「달팽이들」에서 웹디자이너인 '나'는 " 단체에 융화되는 사람도, 단체에서 만난 개인과 친분을 쌓는 사람도 아니었다. 내게는 단체생활에서 요구되는 연대의식도 없었고, 인간관계에 필요한 친화능력도 없었다."고 했다. 사랑도 선택이 아니라 문득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관계의 부재를 원했고 스스로 달팽이가 된다. 달팽이, 혼자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와 접촉을 하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많은 친구를 가질 수 있고, 굳이 나가서 일자리를 찾지 않아도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의 경우처럼 '소호족'이 되는 거다. 내가 이웃이나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들도 내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너에게 상처받기 싫어 안전한 나만의 고립을 택하였으나 그건 인생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일이었던 것. 그럼에도 나는 '나'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관계의 부재 그건 언제부터였던 것?

또 한 명의 고독한 아이를 만나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소설집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들의 어린시절일 것이다.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왕따를 당하면서도 그까짓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둥 시큰둥해한다. 그래서 소설들이 마구 섞여있지만 모두 읽고 나면 어쩐지 연작 소설처럼 느껴진다. '일탈만이 진부한 불행으로부터' 스스로를 '유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소호족이 되고 실연을 당하자 혼자 밥 먹는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어주는.  

리뷰를 쓰다가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단편을 읽고 나니 목적지에 와서 책을 덮었던 것. 아차, 싶은 마음에 읽어보니 그녀 이런 걱정이다. "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 나약하고 의존적이고 기만적인, 그래서 자기애와 자기비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아이들은 모두 나다(…)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또 부끄러워지겠지만, 내 소설은 그 부끄러움의 기록이겠지만, 뭐 어때?라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소설집 속에 나오는 모든 그녀들은 그렇다. 콤플렉스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에 미숙하지만 그런 것쯤이야 '뭐 어때?'라는 쿨한 그녀들로 인해 관계 속의 부재따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구나 애인에게 버림을 받았을 지언정 그런 것 또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할 것이라는 꼿꼿한 마음이 그녀들을 살아가게 한다. '너무 많이 생각하면 오히려 잘 안 되'니까 '무심해져야' 한다는 사실.  

그녀의 소설에서 무수한 공감을 하게 했던 문장들은 그것에 있었다. 시간은 언젠가 흘러가버리는 일, 타인의 시선에 무심해지면 되는 일, 관계의 부재 속에서도 혼자서도 밥 잘 먹고 잘 사면 되는 일, 그럼에도 고독함을 느끼면 '뭐 어때?'하고 쿨한 마음을 갖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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