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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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레시피를 읽고 그대로 만들 줄은 안다는 얘기다. 또 그걸 응용할 줄 알고, 친구들을 불러 내가 만든 요리를 먹어보게 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 물론 내 요리는 재료에 따라 국적불명일 때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요리는 재료를 몽땅 구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없으면 없는 대로, 가지고 있는 재료로 대충 만드는 얼렁뚱땅 요리가 많기 때문. 그럼에도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해하며 만들기도 한다는. 그러나 그것도 일이 바쁘고 주말이면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부터는 전혀 못 하고 있다. 가끔 특별한 날에 간만에 요리 실력을 보여줘? 하며 요리를 하기도 하지만 역시 예전의 그 맛이 나지 않아 이젠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니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하기도 이젠 좀 창피한데 그런 내게 요리의 유혹을 강력하게 느끼게 한 책이 나타났다. 바로 『카모메 식당』이다.  

어릴 때 동생들에게 떡볶이며 라면을 끓여주면 누나는 떡볶이 집을 해야 한다고! 추켜세웠다. 아마도 누나를 부려먹을 욕심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겠지만 진짜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의 요리에(라면이나 떡볶이도 요리라면;) 자부심을 가졌다-.-; 또 얼렁뚱땅 만든 내 요리를 맛본 친구들이 맛있다며 식당을 차려야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할 때도, 겉으론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면서 속으론 정말로 해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데 이게 취미로 하면 즐겁지만 일이 되면 분명 지긋지긋해질 것이라는 걸 순간적으로 깨달으면서 그래, 식당은 무슨. 하고 말았다는. 하지만 사치에처럼 복권에 당첨된다면, 나도 국적을 알 수 없는 내 맘대로 레시피를 만들어 매상과 상관없이 내킬 때마다 요리를 할 수 있는, 그런 취미 같은 식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난 사치에처럼 뽑기(!)에 운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 복권에 당첨되는 행복한 일이 생길 일은 없겠지만=.= 

영화로 먼저 만났던 『카모메 식당』은 영화만큼이나 책도 유쾌발랄상큼하여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힘이 났고, 축 처져 있던 내 마음에 긍정 에너지를 담뿍 넣어주었다.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책에서 나올 때는 영화에서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더욱 쉽게 읽혔고 좋았던 점은 영화에서 상세하게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까지 알게 되었다는 거다. 사치에가 핀란드로 가게 된 사정이나, 미도리와 마사코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이 갔던 것도 영화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들 모두 젊은 나이가 아니라는 사실.   

처음부터 작정을 했던 사치에를 제외하고『카모메 식당』에 등장하는, 리사까지 포함하여 세 여자의 삶은 그동안 그렇게 의미 없이 나이를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살던 그들이 부모에게 벗어나고 가족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바람난 남편으로 인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이게 내 삶인가, 난 뭐지?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지? 느끼게 되면서 그들은 새로운 인생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건 나이도 상관없고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는 거였다. 그저 뭔가 새롭게 할 자신감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나이 탓, 뭔가를 시작하려고 해도 나이 탓을 하느라 시작조차도 못하는 나, 어쩌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며 한탄하고 아직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정신 없는 싱글인 내게 이들은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물론 내겐 미도리나 사마코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아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겪을 지도 모르고, 그러다가 나 역시 미도리나 사마코처럼 똑같은 심정으로 어딘가로 떠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정말 사치에와 같은 사람을 만나 그 어느 곳에서든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나?! 

'카모메 식당'은 그런 장소다. 외로울 때 날 위로해주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그곳에서는 사치에의 운처럼 마음먹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그런 곳. 그런 곳이 하나 있다면 그게 핀란드든 일본이든 혹은 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이든 상관이 없을 것 같다. 그들 세 여자 덕분에 나는, 작은 용기를 하나 얻었다. 지금 당장 식당을 차리겠다고 박차고 나가진 못하지만 언제든 그들처럼 겁 없이, 혹은 무모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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