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게 되었을까?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주전자(그땐 모카포트를 처음 봤으니 그런가보다 했던 것)에 내려 마시는, 거의 사약과 같았던 커피는 기억이 난다. 미국에 살던 아버지 친구 분이 한국에 들어오며 커피와 모카포트를 선물했던 것. 그 당시만 해도 원두 커피는 다방이라는 곳에서만 팔았던 것 같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커피의 맛도 제대로 모르던 때였으니 그 찐한 사약과도 같은 커피를 내려서 마셔보라고 주었을 때 프림과 설탕을 있는 대로 넣어 아주 달짝지근하게 해서 마셨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맛 없는 커피를 마실 때 친구들과 했던 말이 '행주 빨은 맛'-.-;; 딱 그 맛이었던 것-물론 그 맛을 알 도리가 없지만;;). 솔직히 왜 이런 걸 마시지? 했었다는.  

그 후에 대학 들어가 마셨던 커피는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던 아주 연한 커피였고 거의 보리차 같았던 그 커피가 진짜 커피라고 생각했었다(그것도 설탕 없이 마실 때는 밍밍하니 아무 맛도 없었는데). 그리고 요즘 들어 커피라고 하면 다들 아는 세계적인 브랜드 커피를 마셨던 것은 싱가폴 여행에서였다. 그즈음 이대 앞에 스타벅스가 들어 왔었고, 한국에서는 마셔보지 못하고 이름만 들었던 그 커피를 싱가폴 시내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한 야외 매장이 있는 스타벅스에서 마셨는데, 처음보는 커피 종류(?)와 뭔지도 모르는 단어들에 당황하여 얼떨결에 시켰던 게 아마도 '오늘의 커피'였을 것이다. 물론 두 모금도 못 마시고 남겼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입맛이 언제부터인가 점점 진한 원두에 맛들여지게 되고 이젠 에스프레소도 거뜬히 마실 수 있게 되자, 커피 사치를 부리게 되었다. 커피의 원산지를 찾게 되고 종류에 따라 맛을 느끼고 싶었고 커피를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았다. 커피를 애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랬다. 모카포트는 기본이고,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을 제외하곤 집에서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온갖 용도의 커피 용품들을 사서 사용을 해보기도 했다. 기껏해야 하루 두 잔 마시는 게 다인 주제에, 커피애호가도 아닌데도 그랬던 것. 그리고 지금은 핸드드립 커피에 매료되어 있는 상태인데…   

핸드드립 커피에 빠지다

핸드드립 커피에 빠지게 된 것은 순전히 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드립 커피를 마시기 전엔 드립 커피 역시 프레스에 만들어 마시는 커피처럼 맛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지금 생각하니 아마도 프레스 커피를 잘 만드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생각 같아서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젤 입맛에 맞는 것 같았지만 가격이 장난 아니었고, 커피메이커는 부담스러웠으며, 모카 포트는 귀찮았고 프렌치프레스 종류는 맛이 별로였다. 그러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커피 루악'을 외치며 핸드드립 커피를 만드는 장면을 보고 앗, 저거야! 하고 외쳤던 것(사실은 더 이상 부릴 커피 사치가 없었던 것. 뭐 요즘은 네스카페의 캡슐 커피가 당기긴 하더라마는, 혼자인 주제에, 커피를 애정하지도 않으면서 그딴 사치는...)

편안하다는 이유로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지만 원두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마실 수 있는 커피였기에 처음으로 신선한 원두와 그렇지 않은 원두의 차이를 알게 되기도 했다. 누군가 가르쳐줘서라기보다는 드립으로 내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 또 우연히 들어간 블로그에서 핸드드립에도 기술이 있어 따르는 방법에 따라 맛이 천지차이라는 걸 알고선 설마? 라고 의심했는데 그냥 생각 없이 내리는 커피와 나름 방법에 따라 내리는 커피의 맛을 확인하고서야, 그럴 수 있구나 알게 되었던 것. 

예전엔 대충 한 달이 지나도 커피 메이커에서 내리는 커피를 마시면 그 맛이 그 맛이었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원두의 맛은 신맛과 쓴맛. 두 종류였고, 나는 신맛을 싫어하기에 시지만 않으면 좋았던 것 같다. 한데 핸드드립을 사용한 후부터 신맛과 쓴맛을 떠나 원두의 신선함과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눈으로 보면서 물을 부으니 자연적으로 신선한 원두를 알게 되었던 것. 책에 보면 보통 로스팅한지 3~7일 사이가 제일 맛있는 원두라고 하고 보름이 지나면 버려야 한다고 한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다 보니 그게 뭘 의미하는지도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그걸 알고 나니 보름만 지나면 왠지 커피를 버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는(=.=;; 애호가도 아니면서;)  

또 요즘은 원두를 집에서 볶는게 유행인듯 내가 아는 사람들도 직접 원두를 볶아 내려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커피의 신선도에 따라 맛의 차이가 어떠한지를 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전처럼 그냥 커피면 커피라는 생각보다는 조금만 알면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한 몫 했으리라.  

이젠 커피도 일상이 되어 골목골목마다 자칭 바리스타들이 자리잡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는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골라 마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커피 애호가들은 일부러 맛있는 커피를 마시겠다고 멀리 찾아가기고 하고, 핸드드립의 명인들을 찾아가 한 수 배우기도 한다. 가끔 커피를 마실 수 없는 곳에 가면 에스프레소든 핸드드립이든 원두의 향이 맡고 싶어 환장(!)할 때도 있는데 그만큼 커피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기호품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주말 동안 핸드드립에 관한 책을 읽으며 커피 생각이 많이 났었다. 한데 우연히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곳이 핸드드립 커피를 파는 곳이었고 색다른 핸드드립의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보통 내가 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것보다 훨씬, 진한 맛. 에스프레소보다는 스트롱에 가까운 맛이었다고나 할까. 핸드드립을 그 정도로 진하게 마시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맛이 좋았다. 그 바람에 속이 차 있지 않음에도 리필까지 해서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잠을 설쳤다는(사실 커피와 잠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임에도 그랬다-.-;;)  

이리저리 누어도 잠이 오지 않아 책꽂이를 쳐다보다 눈에 들어온 책은 홍차에 관한 책. 커피에 관한 책을 읽고 나니 홍차에 관한 책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난 홍차도 좋아하고 있었던 것. 아, 홍차 이야긴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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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2 13: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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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2 15: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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