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빅픽처』를 읽었다. 친구의 강추로 읽게 되었는데 흥미로웠다. 처음엔 도대체 무슨 얘길 하려고 이러는 거야! 싶은 생각에 그냥 덮어버리려다가 밀린 버스 안에서 할 일이 없어 계속 읽게 되었고 그만 빠져버리게 되었다. 한번 잡으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주말이 되자 옳다구나! 잘 됐다며 밤새 읽었고 결국은 마지막 장을 덮었다. 스토리를 이야기 하자면 너무나 완벽하여 역시, 소설이구나 싶다. 작가가 깔아 놓은 복선들은 뒤에 가서 척척 맞아 떨어져 어느 것 하나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과연, 이런 삶이 있기나 하단 말인가 싶기도 하고 비록 내 삶이 원하는 삶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이 책을 읽고자 한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니 긴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른 상태에서 읽었고 그래서 마지막이 어찌 될 지 궁금했으니 궁금하면 읽어보라는 말만 하고 싶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어떤 책이(여기서부터 어쩌면 스포일러! 싫으신 분은 여기에서 그만 읽으시길!) 전광석화처럼 머릿속에서 번쩍! 하며 떠올랐고 굳이 연관성을 찾자면 몇 번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정도인데 그것도 끼워맞추자고 하니 그런 것일테고 아무튼 그런 책이 있어서 같이 올리려고 하니 약간의 스포일러는 어쩔 수 없음을 밝힌다(ㅋ괜히 친절한 척;;).
『빅픽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변호사이지만 자신의 삶이 못마땅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돈도 잘 벌고 예쁜 아내에 자식까지 둘이 있지만 그들 간에 애정엔 문제가 있다. 아내가 외도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다보니 진짜로 외도를 하고 있었고, 그 외도가 못마땅해 자꾸 신경을 쓰다보니(뭐 당연한 일이지만) 거의 의처증 증세를 보이고, 그럴수록 아내는 더더 남편이 싫어지고, 그런 와중에 남편은 '내 인생이 왜 이런가, 내가 예전에 좋아하던 사진이나 찍으며 살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괜히 옛날 애인이 종군기자로 티비에 나오는 장면은 넣어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고) 그런 후회를 하게 되다가 마침내 아내가, 의심했던 그 '놈'과 키스하는 장면을 포착하게 되면서 사건은 시작되는데(작가가 어찌나 완벽하게 스토리를 짜 놓았는지, 정말이지, 이야기가 척척 맞아떨어진다.)...
기가 막히게도 그 '놈'은 잘 나가지도 않는 사진가였고, 가족이라곤 없으며 아버지의 연금으로 빈둥거리며 먹고사는 남자였다. 이 남자 한 명 사라진다고 해서 누구하나 궁금해할 사람도 없을 것(자신의 아내를 제외하고는)이었다. 그렇지만 '내' 아내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고 죽일 수는 없는 일인데, 그만 홧김에(모든 일은 어이없게도 그렇게 시작하는 법) 죽여버리고 만다. 어랏, 이거 어쩌지???
하지만 그가 누군가! 변호사다. 똑똑한, 잘 나가는. 그는 자신을 죽이고 그 '놈'이 되기로 한다. 아내와 아이랑 헤어지는 것은 너무 슬프지만 자신이 꿈꿔왔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사진가. 실력 없는 사진가가 아니라 진짜 실력있는 사진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리하여 변호사인 자신을 죽이고(!) 다시 살게 되는 삶!!!(아, 모든 것에 어찌나 척척 들어맞는지..내 삶도 이렇게 내 생각대로 척척 들어맞으면 좋겠다 -.-) 어떨까? 좋을까, 아닐까?
이쯤에서 머릿속에 떠올랐던 다른 책을 이야기 해보자. 그 책은 『다시 한 번 리플레이』다. 제목처럼 다시 돌아간다는 이야기. 뭘? 내가 왜 이 책을 떠올렸겠는가. 바로 인생이다.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그 상황은 나도 잘 모른다. 그냥 죽은 줄 알았는데 눈을 뜨니 스무 살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마흔세 살까지 살았던 삶을 다 잊은 것도 아니다. 그 삶은 그 삶대로 다 기억을 하고 다시 스무 살이 된 것이다. 어째, 이런 일이? 맞다. 판타지니까, 소설이니까 가능하다. 아무튼 『빅픽처』도 거의 판타지스럽지만 이건 진짜 판타지인 셈이다. 자,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 남자는 똑같은 삶을 살았을까? 그렇다면 정말 멍청이지. 누구나 그럴 것이다. 전생을 기억한다면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그 남자 역시 그랬다. 살면서 후회했던 일들은 모두 즐기며 산다. 살다보니 전생따윈 다 잊어버렸고 이제 제대로 인생을 즐기려는데 다시 덜컥, 죽어버리고 만다. 이번엔 진짜 죽었을까? 오우, 노우~! 그렇다면 판타지도 소설도 아니다. 세상에, 눈을 뜨니 또 다시 스무 살, 오 마이 갓! 을 외치지만 다시 살아났으니 이젠 좀 계획적으로 산다. 미래의 일을 알기에 돈도 많이 번다. 그렇다고 좋은 일만 생겼을까? 그건 아니다. 이젠 전생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이나 죽었던 그 나이가 되니 불안해졌다. 죽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을 써보지만 이 남자, 마흔세 살이 되더니 다시 죽어버린다. 그리고 눈을 뜨니 다시 스무 살! 꺄악! 뭐 이런 인생이!!! .
어쨌든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그냥 현재를 즐기며 살자. 인생 별 것 없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 살아도, 나를 죽이고 딴 놈이 되어 살아도 다 똑같다는 결론이다. 첫 인생만큼 소중한 것은 없고, 처음처럼 좋은 것은 없었다.(그래서 다들 첫사랑이 좋다는 둥, 처음 맞선 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중, 조강지처가 제일이라는 둥 뭐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닐까?^^)
『빅픽처』에서 '나'의 옆집에 사는 빌은 말한다. "인생은 지금 이대로가 전부야. 자네가 현재의 처지를 싫어하면, 결국 모든 걸 잃게 돼.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지금 가진 걸 모두 잃게 된다면 아마도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을 거야. 세상 일이란 게 늘 그러니까." 그러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즐기며 살라는 뜻이다. 아니라고 해봐야, 결국 인생은 한번 밖에 없는 거니까. 이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