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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림 같은 이야기 - 그림으로 읽는 소설, 소설로 보는 그림
수잔 브릴랜드 지음, 정은지 옮김 / 아트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그림을 잘 모르지만 그림 보는 것은 좋아라 하는 편이어서 그림과 관련한 책은 가리지 않고 읽어보는 편이다. 그런 탓에 깊이는 없고 얕은 지식만 가지고 있는데다, 화가들의 인생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교육방송에서 하는 인상파들이 나오는 영국드라마를 보고 난 후에 화가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미술에 대해 잘 몰랐으니(공부 안한 티가 난다) 인상파 화가들이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중심으로,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었으며 그런 까닭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화가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그 드라마를 보며 놀랍기만 했다나. 한데 그 드라마는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호기심 충족에 인상파라는 미술학파를 확실하게 내 머릿속에 인식시켜 주었다. 그 후로 인상파 이야기라면 지식이 쌓이든 말든 찾아 읽었다. 그러니 이 책『어쩌면 그림 같은 이야기』의 책소개를 보고 1부가 인상파 화가를 중심으로 쓴 소설이라고 하니 관심 집중된 것은 당연.
첫 이야기 「물뿌리개를 든 미미」에는 이웃집에 사는 '삼십대로 야위고 점잖은 갈색 바지와 둥근 펠트 모자로 소박하게 차려입은' 화가로 르누아르가 등장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림을 보면 화가의 의도와 상관 없이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펼치게 된다. 작가인 수전 브릴랜드 역시 그랬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며 그녀는 상상력을 펼쳤다. 소설 속에는 실제 인물인 르누아르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그가 그린 그림 중 몇 편이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 보면 진짜로, 르누아르에게 이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그 그림을 그린 배경이 이런 상황이었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진 단편은 폴 세잔이 나오는 단편 「이 돌들 중에서」였다. 내용보다는 폴 세잔이라는 인물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인데 앞서 말한 영국드라마(찾아보니 - 영국 BBC가 제작한 미술드라마 "빛을 그린 사람들"이란다. 모네, 르느와르,드가,마네,세잔 등 19세기말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다룬 3부작 드라마였다.)에서 기억나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에선 마네가 매독으로 침대에 누워지내던 장면과 다른 화가들에 비해 부유했던 세잔이 화구를 챙겨서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리러(?) 다니던 장면이 있었지만 유독 세잔과 관련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드라마에서 세잔은 젊었지만「이 돌들 중에서」에 등장하는 세잔은 나이가 들었다. 서로 매치가 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리길 좋아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암튼 젊은 세잔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작가, 그와 관련한 장면이었다.
그는 바로 인상파 화가들을 알게 되면 빼 놓을 수 없는 작가, 에밀 졸라이다. 세잔의 유년 친구이기도 한 그는 자연주의 작가로도 알려져 있으며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해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했다. 에밀 졸라는 "'봄의 미술전'에 비평을 써서 기성의 대가들을 비판하고 마네·피사로·모네·세잔 등 신진의 불우한 인상파 청년화가들을 강력히 지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림 같은 이야기』에는 아쉽게도 세잔과 에밀 졸라의 관계에 관한 단편이 나오지 않지만 인상파 화가의 이야기를 담은 에밀 졸라의『작품』을 같이 읽어보면 인상파 화가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림 같은 이야기』가 실제의 화가와 그림 그리고 허구의 내용을 다루었다면 『작품』에서는 이름을 달리 사용했지만 누군지 뻔히 알만한 화가와 작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소설이면서 실제일 수 있는 이야기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좋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그림 같은 이야기』에는 르누아르와 세잔 외에도 모네, 마네, 고흐와 모딜리아니와 유일한 여자 화가 모리조가 등장하는 단편들이 들어 있다. 그들은 대부분 화자에 의해 묘사되는데 르누아르와 세잔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모든 단편들이 진실인 듯 아닌 듯, 매우 흥미롭다. 특히 마네와 모리조의 관계는 이 책에서 알게 되었는데, 다른 책을 찾아볼 정도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우리는 그림을 볼 때마다 나만의 감상을 가진다. 그런 감상들은 그림과 함께 많은 책들을 만들어냈다. 가끔은 그림을 보며 치유를 하기도 하고 그림을 보며 안정과 위로를 얻기도 한다. 또한 수전 브릴랜드처럼 상상력을 펼쳐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림과 글에 대해서는 상상력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한다. 『어쩌면 그림 같은 이야기』는 그런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읽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