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많은 것을 베풀어준 나무
*아까시나무
나는 '아카시아' 꽃이 가을에 피는 줄 알았다. 오래 전, 5월쯤이었나? 선배랑 교정을 거닐다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그랬었다. 어랏, '아카시아' 꽃이 왜 5월에 피는 거지?
선배는 '아카시아'가 5월에 피지 그럼 언제 피냐? 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이유는 모르겠다.
'아카시아'가 왜 다른 계절에 핀다고 생각을 한 건지.
'아카시아'는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많은 즐거움을 주는 나무였다.
꽃이 피면 꽃 속에 들어 있는 꿀을 빨아 먹었고
잎파리는 한 잎 두 잎 잡아떼며 행운을 점쳐보기도 했었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런 놀이조차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나도 언젠가부터 '아카시아'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나무에 대해 잘 모르니 그저, '아카시아'는 좋은(내게 즐거움을 주었으니) 나무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제 『강우근의 들꽃이야기』를 읽고서야 '아카시아'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어이구, 이런 무지!!
아까시나무는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하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잘 몰라도 '아카시아'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카시아는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자라는 다른 나무 이름이다. 아까시나무와 같은 콩과식물에 속하지만 속屬이 서로 다른 나무이다. 아까시나무 학명이 '수도-아카시아pseudo-acacia'인데 이 뜻은 '가짜 아카시아'란 뜻이다. 아마도 아카시아처럼 가시가 있고 또 작은 잎이 여러 장 모여서 달리는 게 닮아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 같다. 그런데 가짜 아카시아가 이 땅에 건너와서 그냥 진짜 아카시아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아까시나무는 빠르게 자랄 뿐이라고 한다.
오래 전 나무 한 그루 없던 시뻘건 민둥산을 푸르게 만드는데 일조를 한 나무다.
한데 아까시나무 덕분에 산이 어느 정도 숲을 이루고 모양을 갖추자
쓸모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독성을 내어 다른 식물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잘라내면 더 악착같이 옆으로 옆으로 뿌리를 뻗고, 뿌리에서 가시투성이 줄기를 내어 숲을 가시덤불로 만드는 깡패로 낙인찍혀 버린 것이다. 산업 역군이라 불리며 밤낮없이 일하다 이젠 필요 없게 되었다고 퇴출당하는 이 시대 노동자 처지처럼 말이다.
필요할 때는 써먹고 필요 없어지면 내치는 것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닌가보다.
한갓 나무에게도 그런 논리가 통하니 말이다.
그럼, 아까시나무가 진짜 천덕꾸러기인지 그 진실을 말해볼까?
첫째, 아까시나무는 꽃과 잎, 열매, 목재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쓰임새 많은 나무다. 잎은 토끼나 염소, 소의 사료로 쓰인다. 꽃과 잎은 사람에게도 좋은 먹을거리가 된다. 무쳐먹고 볶아먹고 튀겨먹고 나물로 샐러드로 언제든지 훌륭한 음식으로 만들어먹을 수 있다.(...)
둘째, 아까시나무는 자꾸 베어내면 점점 더 성질이 사나워져서 가시만 무성해지는 가심덤불이 되고 만다. 목재로도 사용할 수 없고 숲도 망치게 된다. 아까시나무를 없애는 방법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아까시나무는 자람이 무척 빠른데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다. 50년쯤 자라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비바람에 뿌리째 뽑혀 쉬이 쓰러져 버린다. 이렇게 아까시나무는 스스로 생명을 다하고 참나무한테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스스로 알아서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나무,
그런 나무를 건드려 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것이 세상을 바꾼단다.
한낱 나무이어도 그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길가, 아무 곳에서나 자라고 있는 잡초이며 들꽃이라해도
꽃으로 피어 도시의 삭막한 콘크리트에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보도블럭 사이에서 녹색의 싱싱한 풀로 자라나 인간에게 그 푸른 빛을 선사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