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리뷰를 쓰는 일보다 페이퍼를 작성하는 일이 훨씬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그 신간들을 보며 어떤 책과 주제를 맞춰 엮어볼까 궁리하고 또 궁리해봅니다. 아래에 책은 나오는 순간 머릿속에 엮어볼 주제가 떠올랐는데, 책을 다 읽고도 올려야지 올려야지 생각만 하고 미루고 있었네요. 장석남의 시, <맨발로 걷기>에 이런 시구가 나옵니다. "생각 위에 찍힌 생각이 생각에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그래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닌데, 저는 늘 생각만 하는 편입니다. 암튼 오늘 할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했으니 이제 이 책들을 한번 엮어볼까 합니다. 오늘 엮어볼 책은 음식과 관련한 책 3권입니다. 음식의 역사와 바다의 먹거리 그리고 점점 잊혀져 가는 고향의 맛. 자, 침을 꿀꺽! 삼키면서 읽어볼까요?^^*
저는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 고향은 내륙 지방이라 바다를 보기 위해선 서너 시간은 차를 타고 나가야 갈 수 있기 때문에 생선과 그다지 친해질 수 없었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생선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았죠. 물론 주변에 꽤 깊은 강이 있어 민물 고기들은 먹을 수 있었지만 음식의 취향은 엄마를 닮는다고 하죠? 비릿한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시는 엄마 덕분(!)에 생선이라곤 딱 정해진 몇 개의 종류만 먹고 자랐답니다. 그래서 생선회라든가, 생선 구이라든가, 생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엔 침은커녕 유혹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런 내 입맛을 확! 잡아당긴 책을 만났어요. 바로 소설가 한창훈 샘의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입니다. 일찌기 소설집 『나는 여기가 좋다』를 읽으면서 한창훈 샘이 지금 거주하고 있는 거문도의 생활상과 그곳에 사는 분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었는데 그들이 즐겨먹는 생선들을 이렇게 맛깔나게 소개를 해주시다니 저처럼 생선을 즐기지 않는 사람조차도 깜빡 넘어가게 만드시더군요.
한창훈 샘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직접 카메라를 장만하고 바다로 나가 낚시를 하며 손수 사진을 찍었다고 해요. 거문도에서 태어나 평생 바다를 노래하며 이야기해 온 그는 바다로 나가 경험한 7살 때부터의 기억을 시작으로 40년 동안 생계를 위해 해온 낚시의 노하우를 이 책에 가득 담았답니다. 이 책은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읽고 그에 영감을 받아 쓰게 된 책인데, 정약전 선생이 바다를 좀 아는 거문도 섬사나이의 마음을 자극한 셈이죠. "네가 바다에 대해 알아?" 뭐 이렇게?^^

한창훈 샘은 이 책에서 30여종의 '갯것'들을 잡고, 다루고, 먹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더불어 그가 풀어내는 바닷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슴뭉클하다가 끝에가서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들로 가득해요. 처음엔 진지하게 나가다가 뜬금없는 마무리로 독자를 즐겁게 해준다고 할까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침만 고이는 게 아니라 웃음까지 고이게 만드는 책이랍니다. 한창훈 샘은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고 하셨는데, 에효,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도대체 이런 생선이 있었단 말인가? 이런 것도 먹는 것이란 말인가? 불쌍한 소릴 연방해대었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꼭 이 불쌍한 티를 싹 치워버릴 생각이랍니다! 거문도에 가서 치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일 것 같다는!^^
두 번째 책은 음식의 역사를 다룬 책 『팬더 곰의 밥상견문록- 식전』이에요. 우리 밥상에 매일 올라오는 반찬과 밥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고 언제부터 우리 밥상에 올라온 것인가? '밥맛, 입맛, 손맛으로 돌아보는 한국인의 밥상문화 오천 년!'이라고나 할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우리 밥상에 늘 빠지지 않고 우리 고유의 음식이라 생각했던 김치의 역사가 사실은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예요. 그럼 100년 이전엔 김치라는게 없었던 걸까요? 고려시대엔 배추가 식용이기보다는 약용으로 쓰였고 16세기에 배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지만 종자가 달라 김치를 담그기보다는 겉절이 정도의 반찬밖에 만들 수 없었다고 하네요. 하긴 요즘 날씨 탓에 배추 가격이며 야채 가격이 많이 올라 서민의 반찬이라 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긴 했지만 서민들이 서민의 반찬이라 부르며 김치를 먹어댄 것은 겨우 100년이라니 참 놀라운 사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찬보다는 밥을 많이 먹는 편이라고 해요. 생각해보니 '밥심'이라는 말의 의미가 그런 것 같더군요. 개화기에 외국 사람들이 남긴 글을 보면 한국 사람들이 먹는 밥의 양을 보며 놀라는 표현이 많았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린 정말 서양 사람들과는 다르게 반찬보다 밥, 일단은 밥을 많이 먹어야 배가 부른 느낌을 가지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거든요.ㅎㅎ
저는 오늘 가을을 맞아 여름에 빠진 기운을 보신(^^)하기 위해 추어탕을 먹었어요. 추어탕 집에 가니 산초=초피가 있더군요. 우리나라엔 오래 전에 고춧가루가 없었고 고춧가루 이전에 매운 맛을 위해 많이 쓴 게 산초 혹은 초피라고 하네요. 저는 이걸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 그저 추어탕엔 그걸 넣어 먹더라 는 정도만 알고 있고, 산초 특유의 향이 난다는 것만 알고 있는데 이 재료가 사라진 이유는 고춧가루처럼 대량 생산을 할 수 업었기 때문이랍니다.

아무튼, 김치를 비롯하여 된장찌개, 국수가 쌀밥보다 귀했던 이유, 보릿고개 , 개고기, 냉면, 요즘도 말이 많은 경상도 음식과 전라도 음식에 관한 이야기 등등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많은 반찬들과 음식들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이 책에 들어 있어요. 역시 읽고나면 입맛 당기는 책이죠. 이건 요리책이 아니라 음식의 역사를 다룬 책인데도 말예요. 음식은 "실제로는 정치, 경제, 사회, 기술 등 여러 요소가 혼합된, 그야말로 인간 문화의 정수다. 그렇기에 우리 밥상을 새로이 톺아보는 일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인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음식을 제대로 알고 나면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늘 추어탕을 먹고 나니 사실은 공선옥 작가의 『행복한 만찬』이 많이 생각났어요. 논이 없어 미꾸라지를 잡지 못했고, 머스매가 없이 가시내들만 있는 집이라 종아리에 흙탕물 묻히며 미꾸라지를 잡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추어탕을 끓여본 적이 없다던 글이 생각났기 때문이죠. 추어탕이 없으면 가을이 없다는 공선옥 작가는 미꾸라지를 잡아 오면 "소금으로 숨을 죽인 다음에 폭 고아서 얼개미에 내린 다음에 씰가리(*시래기.)를 넣고 된장기도 좀 하고 확독에다 쌀과 생고추와 마늘을 함께 갈아 붓고 거기에 젬피가루를 넣으면 걸쭉한 추어탕이 완성된다."며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 일꾼들에게 고깃국도 아닌 추어탕 한 그릇 먹임으로써 "아, 몸과 마음에 꽉 찬 가을, 꽉 찬 행복! 그 정도는 먹어야 ‘아, 우리가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구나.’ 실감이 난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저는 추어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네, 전 물 속에 사는 것들은 모두-.-;;) 오늘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름 동안 고생한 내 몸을 위해 보신으로 맛있게 먹어봐야겠구나 하고요. 그래서 맛있었냐구요? 네! 나쁘지 않더라구요. 먹고 나니 힘이 불끈! 솟는 것도 같고^^;
공선옥 작가의 『행복한 만찬』엔 추어탕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내던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어릴 때 반찬으로 많이 만들어 먹었던 재료들, 봄이 오면 쑥 캐러 가던 일, 찹쌀 풀을 먹여 만든 김부각이나 가죽 부각, 감자처럼 생긴 토란, 포슬포슬한 하지 감자의 추억 등등 공선옥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함께 우리 입맛을 자극하죠.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먹고 싶은 음식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릴 때 추억들이 그 요리들과 같이 떠올라 향수를 자극해요.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엄마가 그리워지고 엄마의 반찬들이 먹고 싶어지고 또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죠.
이렇게 보잘 것 없다고 치부대던 우리네 밥상, 햄버거나 피자, 스테이크 같은 서양 요리에 많이 밀렸지만 이렇게 책으로 만나보고 나니 웰빙을 하려면, 다이어트를 하려면 이런 음식들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앗! 이걸 쓰다 보니 저녁 시간, 아까부터 계속 뱃속에서 쪼르록~ 소리만 들리는데 저녁으로 뭘 만들어먹을까, 고민이 되네요.(헉, 근데 제 집 냉장고가 고장 난지 어언 한 달째! 그러고 보니 집에서 반찬 만들어 따뜻한 밥 먹어본지도 ㅠㅠ 이런 글을 써놓고 라면에 밥말아먹을 신세라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