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은 무사했어요 - 최전호 : 아랍 여행 생존기
최전호 지음 / 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좋아하는 책 분야는 소설이다. 그리고 여행서, 그다음이 그림과 관련된 글을 모은 책. 가끔 그림책도 보고 인문서도 기분전환용으로 읽기도 하지만 역시 난 쉬운 이야기들이 좋은 것 같다. 근데 요즘은 소설조차도 잘 읽지 않는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는 게 이유다. 한 달에 최소 15권씩 읽어대던 시절은 옛일처럼 느껴진다. 이제 머릿속 정리가 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복잡하다. 그래서 요즘은 시집을 읽는다. 가벼운 책, 얇은 소설을 위주로 읽는다. 리뷰는 언감생심.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황송. 

어제 잠 들기 전에 여행서 관련된 책꽂이를 들여다봤다. 가볍게 읽을 책을 찾았는데 그 많은 여행서 중에 막상 고를려고 보니 고를 수가 없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림과 관련된 여행서를 한 권 골랐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는데 책을 펼치니 아, 뱅뱅 돌더라. 그래서 결국 사진만 보다가 덮어버렸다. 아침에 나오며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문득, 눈에 들어온 책, <첫날은 무사했어요> 아랍 여행기다. 

내 친구 스누피, 지금 라마단이 한참이라는 모로코에서 살을 뺄 생각인지(-.-) 고생길로 들어선, 씩씩한 처자가 떠올라 책을 들고 왔다. 그러고 보니 내 수많은 여행서 중에 아랍 여행서는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나라면 아랍으로 공짜 여행을 시켜준다해도(움, 물론 가기는 하겠지만 고민을 할 수도 있는 부분 ㅎㅎ) 가지 않겠지만(아, 이슬람 무서워~) 이 책을 보니, 어랏! 가고 싶어지더라는. 암튼, 너희들도 이 책을 보면 가고 싶어질 거야. 구경이나 한번 해볼래?^^ 

 아랍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피부색, 생김새, 지형과, 집들의 형태, 풍경들... 그리고 작가의 글은 발랄, 유쾌하다. 그건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이기에 그런 것 같다. 용기도 좋다. 이런 젊은이(!)를 보면^^ 도대체 나는 그 나이때 뭐했었나 싶다(곰곰 생각해보니.. 에잇, 쓸데 없는). 아무튼 씩씩한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무조건 떠나고 싶어 진다. 떠나면 시호 같은 털털한 여자 아이도 만날 것 같고, 하칸 같은 두목도 만날 것 같고, 사람 잘 챙기는 독일 청년 칼슨도 만나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고 느리게 느리게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사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만은. 

하지만 가끔은 사진을 찍느라 정작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함에도 내 눈은 뷰파인더를 바라보고, 내 손은 셔터를 누르는 데 정신이 없다.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지만,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 때부터 그곳에는 나도, 내가 보고자 했던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한 순간의 흐름을 정지시켜 놓은 그림만이 있을 뿐이다. 진실과 마음이 왜곡된 하나의 그림. 그저 저 먼 곳에서 아름다울 뿐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그림. 사진을 찍어야 하지만 가끔 그것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놓치게 되어버린다. 딜레마. 이 딜레마는 여행 내내 여행자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몇 개의 찰나, 내려놓을 수 없음이다.
 

이런 문장, 참 좋은데...그래도 역시 젊으니까, 생생한 경험들이 더 재미있다. 카파도키아에서 오토바이타다 날아간 사연, 시리아 대중탕 이야기, 교통비 아껴보겠다고 히치하이커 하다가 교통비 옴팡 뒤집어 쓴 이야기, "wow! I'm Korean too."하다가 변태 취급 당한 이야기 등등.   

그리고 이 책에서 내가 젤 좋아하는 것은 그림, 일러스트이다. 아랍풍 물씬 느껴지는 알록달록한 일러스트가 무척 맘에 든다. 사진과 일러스트가 같이 들어간 책은 몇 권 있었던 것 같지만, 가장 내 스타일인 듯. 난 왜 이리 예쁜 그림을 좋아하는 걸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시리 호호-.-;;; 

내 평생 아랍이나 아프리카를 가게 될 날이 올까나 싶지만(난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데 아랍과 아프리카는 피하고 싶다. 예전엔 유럽도 가기가 싫었다. 지금은 가장 가고 싶은 대륙이 유럽이지만, 뭐 가게 된다면 그래, 유럽으로~), 그래서 이 여행 책 한 권으로도 나는 충분히 아랍 여행을 한 것 같지만(어찌 보면 그동안 읽었던 이슬람 관련 책들이 나의 이런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 나오는 먹을 것들!!! 와우, 그 음식과 과일들이 나를 유혹한다. 가리는 것 많은 내가, 음식 사진에 혹 하다니! 분명 직접 먹게 되면 입에도 못 댈 것 같지만도. 케밥이야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으니 패스, 하지만 항아리째 오븐에 가열한 후 항아리를 깨부수고 먹는 항아리 케밥은 어쩐지 맛있을 것 같고, 사진으로 보이는 다양한 모양의 빵들이 스르릅~ 입맛을 자극(아, 밥먹을 시간이 된 게야).  

그동안 이슬람 관련 책들은 읽었지만 여행책으로서 아랍권만 있는 책은 처음이다. <첫날은 무사했어요>란 제목도 뭔가를 궁금하게 만들어 호기심을 일게 하고, 여름 휴가를 가지 못해 조바심이 나던 차였는데 이 책 덕분에 아랍 여행 잘 한 셈이다. 간만에 여행책을 읽으니 좋다. 내친 김에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 어제 친구가 일본 걷기 여행에 대해 말을 꺼냈는데, 문득 그것과 관련된 책을 읽어봐야겠다. 아직 제주 올레도 못 가본 탓에 이번 가을, 어쨌든 제주 올레는 가봐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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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솔솔 2010-09-03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ㅡ^
"첫날은무사했어요"저자 최전호 입니다.
먼저 제 책을 재밌게 읽어주셔서 참 감사해요~그리고 이렇게 멋진 리뷰도 써주시고.
전 여행을 세번 한것같네요.
여행을 하면서 한번,
글을 쓰면서 한번,
그리고 이렇게 제 책을 읽어주신 분들의 리뷰를 보면서 한번 더.
그렇게 좋은 여행을 계속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ㅡ^
그럼 앞으로도 쭉 좋은 책 소개, 좋은 리뷰들 기대할께요~
감사합니다~

readersu 2010-09-03 20:29   좋아요 0 | URL
와, 반갑습니다^^
전 덕분에 아랍 여행 편하게 잘했습니다^^
즐겁게 잘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