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릿(Chick Lit)이란 ‘젊은 여성’을 뜻하는 미국 속어(Slang)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의 줄임말 ‘릿(Lit)’이 조합된 용어로 칙북(Chick Book)이라고도 합니다. 1990년대 중반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일종의 소설장르로, 20대와 30대 미혼여성의 일과 사랑을 주제로 삼은 소설을 말하죠.
그 원조는 제 독서력을 기준으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며 순수함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30대의 여성, 유쾌하고 긍정적인 그녀는 독신을 은근히 즐기면서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을 꿈꾸기도 하죠. 일기 형식으로 된 이 소설은 일을 하면서 사랑을 찾는, 더구나 시트콤 형식의 자잘한 웃음과 긍정적인 바이러스가 무궁무진하여 전형적인 미혼녀의 발랄함을 그대로 전해주어 같은 세대의 여성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마도 미혼여성의 일과 사랑을 코믹하게 때로는 가슴 짠하게 풀어낸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이후로 칙릿의 형태로 나온 소설을 보면 패션에디터의 세계를 생생하게 들려준『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들 수 있는데 작은 도시 출신의 보잘것없는 여성이 누구나 입사하여 일하고 싶어 하는 세계 최고의 패션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스틀리의 개인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아 많은 직장 여성들에게 공감을 주었죠. 이 책에서 보면 세계 최고의 직장은 세계 최악의(!) 근무 조건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미란다 정도의 위치로 올라서기 위해 앤드리아가 보여주는 노력과 일은 그야말로 밤낮이 따로 없으며 하루종일 일, 일, 일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애인에게 버림받을만큼 일을 해야 누구에게나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그런 걸보면 20~30대 여성들도 성공을 위해 남자 못지않은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즈음 드라마로 먼저 알려진 <섹스 앤드 시티>는 그런 경향에 불을 질렀다고 봅니다. 저를 비롯하여 미혼여성이라면 한번쯤은 <섹스 앤드 시티>에 빠져들었을 테니 말예요. 뉴욕에 사는, 절대적으로 평범하지 않은 4명의 여성들이 보여주는 브런치(!) 수다는 우리나라에도 ‘브런치’라는 단어를 유행시킬 정도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칙릿의 절정을 저는 『쇼퍼홀릭』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력을 보여주는 셈이지만 영국의 평범한 출판사 출신의 브리짓을 거쳐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패션잡지에서 일하는 앤드리아를 알게 되고, 뉴욕의 자유로운 네 여자를 거쳐 ‘쇼퍼홀릭’이라는 신종어를 만들어내며 쇼핑에 빠진 20대 여성들의 대표격이 된 레베카까지, 이 여성들의 공통점이 바로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이고 코믹하며(앗! 앤드리아는 좀 제외가 되는 듯) 자유로우면서 결국은 일과 사랑, 두 가지를 모두 쟁취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20~30대 여성들이 가장 바라는 여성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칙릿 소설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쳐요. 그동안 우울하고 칙칙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던 우리나라 문학에 어느 날 가볍고 트렌디한 소설들이 등장합니다. 기존의 로맨스소설이라 일컫는 소설들과는 또 다른 소설들이었죠. 그 대표작으로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들 수 있는데 이른바 현재를 살아가는 20~30대 도시남녀의 지극히 일상적인 사랑과 일을 다룬 소설이었어요. 그 이후 비슷한 류의 소설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비슷하지만 다른, 패션잡지에 다니는 20대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담은 백영옥의 『스타일』, 한 남자를 애인으로 둔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독특한 소재로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이홍의 『걸프렌즈』, 이른바 변종 칙릿 소설을 표방하며 ‘섹스 문제와 직장에서의 갈등, 여자 친구들 사이의 질투, 강남 지향의 속물근성, 젊은이들의 세태 풍속도까지 이십대 여성의 일상을 세밀하게 그려낸 칙릿소설의 전형을 따르는 듯싶다가도, 대학을 스트레이트로 졸업하고 꿈도 찾지 못한 채 치열한 경쟁 사회로 내던져진 88만원 세대의 서글픈 현실과 맞물리면서 깊이의 지층을 이루는’ 김민서의 『나의 블랙미니드레스』까지. 이후로 ‘칙릿‘이라는 말도 하나의 유행어가 되어 20~30대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다룬 가벼운 내용의 소설들은 뭐든지 칙릿 소설로 분류되었던 것 같아요. 저부터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한데, 이런 칙릿 소설은 가볍다는 이유만으로 문학적이지 못하는 비판을 그동안 받아왔습니다. 저부터도 사실은 드라마 같은 소설로 치부하며 그냥 기분전환용 소설로 생각했었죠. 이유가 뭘까? 20~30대 미혼녀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위에 언급된 책들에 나오는 직업이나 이상형의 남자 혹은 명품 이야기 등등은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여성으로서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라서 그런 게 아닐까, 현실적이라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는 스토리들! 어쩌면 이건 나만의 착각일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느 세대나 남녀를 불문하고 각자의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20~30대의 미혼 여성들 역시 그 피곤함은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드라마에 홀릭하듯 나와 비슷하면서 다른 인생을 펼치는 여주인공들의 삶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문학적인 것을 떠나서 말이죠. 암튼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 바로 이런 칙릿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볍든 비현실적이든 간에 일단은 말이 통하면 된다?! 공감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거다?!
그러니 지루한 일상이 싫증나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칙릿'이라 일컫는 소설을 한번 읽어보세요. 어쩌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지도 몰라요. 꿈을 꿀 수도 있을 테고, 어느 쪽으로든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을 거예요.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