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원히 사는 법 ㅣ 그림책은 내 친구 22
콜린 톰슨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10년 4월
평점 :
조카와 나는 놀이를 많이 한다. 우리의 놀이엔 조카 방이나 내 집에 있는 모든 인형들, 책들, 혹은 굴러다니는 종이쪼가리나 구슬들마저도 캐릭터가 되어 놀이에 동참한다. 그 중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역시 책을 가지고 노는 일이다. 도서관 놀이를 하거나 책을 만들거나 글을 짓거나 서점 놀이를 한다. 오늘은 내 집으로 놀라온 조카와 책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는데 인형들에게 밀렸다. 또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얘들이랑 놀 시간'이라며 인형을 내세우는 바람에 책을 권하지도 못했다. 놀이가 다 끝난 후 짐정리를 하다가 조카의 눈에 이 책이 띄었나보다. "어, 이 책 읽어보고 싶어!" 마음 약한 고모는 책 리뷰를 써야 하는데 하고 발뺌을 했는데 머리 좋은 조카는 얼른 보고 줄게 한다. 어쩌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너가 좋아할 줄 알았다며 어차피 나는 읽었으니까 하며 책을 건넸다.
책을 받아들자마자 정신없이 책 속으로 들어간다. 책을 펼치고 텍스트부터 찾는 나와는 다르다. 우선 그림부터 본다. 아주 맛난 요리를 음미하듯 그렇게 그림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 그러고선 텍스트로 눈을 돌린다. 집으로 가는 내내 길거리에서 책을 놓을 줄 모른다. 길에선 읽지마라고 해봐야 말을 안 들을 게 뻔한 녀석이니 나는 녀석이 부딪히지 않게 책을 읽도록 해줄 뿐이다.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책을 덮었다. 자세히 더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 책에 대해선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조카는 알았다고 했다.

솔직히 궁금하다. 대상은 그림책이니 유치원생부터 읽을만하겠지만 초등학교 4학년도 이 책을 이해하기란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치곤 꽤나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영원히 사는 법' 같은 것은 아직 어린 아이들에겐 필요치 않을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조카의 감상이 궁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생들이야 그림만 본다지만 중학년 정도면 유치원생하고는 다른, 또 어른인 나와도 다른 감상을 할 테니 말이다.
열정적인 찬사로 세계 곳곳에서 컬트가 되었다는 콜린 톰슨의 책이란다. 나야 처음 들어보는 그림책 작가지만 꽤나 유명한 작가인 듯하다. 처음 책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확! 끌리는 그림들이 도대체 이 그림 작가는 누구지?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독특한 작가였다. 특히 이 부분의 작가 소개가 맘에 들었다. "톰슨은 언제나 어린 시절의 마법을 믿으며 인생을 제대로 산다면 이 마법은 절대 그치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또한 어른들도 어린이 책을 제대로 즐길 수 있으며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 책이나 그 책을 읽은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어른도 즐길 수 있는 그림책!

방이 천 개나 있는 커다란 도서관의 문이 닫히고 경비 아저씨가 잠에 골아 떨어지면 책들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마치 곰돌이 푸우에 나오는 로빈의 방에 있는 동물 인형들처럼 살아 움직이는 거다. 그 책들 뒤쪽 너머로 문과 창문이 나타나고 불이 켜지며 책장은 거대한 도시로 변한다. 요리책 책장에 <모과류>라는 책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우리의 주인공 피터는 우연히 <영원히 사는 법>이란 책의 기록카드를 발견하고 그 책을 찾아보기로 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 책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그 책을 감춘 것 같다. 왜 그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걸까? 영원히 사는 비법이 들어 있어서일까? 밤마다 피터는 찾아다니지만 그 책은 쉽게 찾아지지가 않는다. 도대체 책은 어디에 있는 걸까. 다양한 장르의 책들 사이로 온 방을 뒤지지만 찾을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책을 찾아낸 피터, 과연 영원히 사는 법을 알아낼 수 있을까?
이 책의 묘미는 물론 철학적인 작가의 메시지이겠지만 아이들이 그 철학적 의미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그림들은 아이들의 눈길을 잡아채고도 남을 것이다. 거대한 책들을 보면 감탄사를 내뱉고 서가에 잔뜩 꽂힌 책들의 제목을 읽으면서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세세한 그림들을 들여다보면서 아이들은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엔 도서관 나들이가 더욱 즐거워지지 않을까.

아이들의 그림책은 그림만으로도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긴말이 없이 오로지 그림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른이 되고서도 그림책에 빠지는 이유는 그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콜린 톰슨은 행복한 작가다. 그의 말처럼 어른인 나도, 책을 보자마자 빠져든 조카도 이 책을 즐겁게 읽었으니 말이다. 흥미진진하고 상상가득한 그림책, 살아있는 도서관에서 떠나는 매혹의 여행, 바로 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