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을 내려오는 한 젊은이였다. 그는 분뇨 통을 앞뒤로 짊어지고 더러운 수건을 머리에 질끈 묶고, 혈색 좋은 아름다운 뺨과 반짝이는 눈을 하고 발로 앞뒤 무게에 균형을 잡아가며 언덕길을 내려왔다. 그는 분뇨 수거인-똥지게꾼-이었다. 작업화를 신고 몸에 착 붙는 감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다섯 살의 나는 이상할 만큼 그 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아직 그 의미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어떤 힘의 최초의 계시, 혹은 어둡고 신비한 부름이 내게 말을 걸어 온 것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몸을 얼얼하게 만드는 어떤 종류의 욕망이 있음을 예감했다. 지저분한 몰골의 젊은이를 올려다보며 나는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욕구, 저 사람이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였다.(…) 말하자면 그의 직업에 대해 나는 어떤 날카로운 비애, 몸이 타는 듯한 비애에의 동경을 느꼈던 것이다. 지극히 감각적인 의미에서 ‘비극적인 것’을 나는 그의 직업에서 느꼈다. 그의 직업에서 ‘온 몸을 바치고 있다’고 할 만한 어떤 느낌, 혹은 자포자기적인 느낌, 혹은 위험에 대한 친근한 느낌, 허무와 활력의 어지러운 혼합이라고 할 느낌, 그런 것들이 흘러나와 다섯 살의 내게 번개처럼 들이닥쳐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에서 화자인 ‘나’가 분뇨 수거인의 모습을 보고 느낀 감정을 적은 글이다. 겨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모습은 오래도록 ‘나’의 뇌리에 남아 ‘나’가 말하듯 ‘비극적인 것’을 느끼며 그를 사로잡는다.
살바도르 달리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나오는 영화 《리틀 애쉬》를 봤다. 달리야 워낙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인지라 알고 있었지만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시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닌지라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것도 영화를 한참 보다가 영화 속에서 꽤 알려진 시인으로 나오기에 그제야 ‘어머! 가르시아 로르카, 꽤 유명한 시인인가 봐!’ 했다.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시인이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은 이렇다. 그 둘의 우정(!)이 남달라 젊은 시절 달리를 이야기 할 때면 같은 기숙사에 있었던 달리와 로르카, 그리고 호모를 무진장 싫어하던 루이까지 세 사람의 이름이 거론된다. 로르카는 <살바도르 달리에게 바치는 송가>도 지었고, 달리는 로르카와 함께 로르카의 고향 카다케스로 가서 그곳에서 받은 영감으로 그린 그림도 많았다. 또 루이와 달리는 《안달루시아의 개》라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이 영화에서 루이는 동성애혐오자로 나온다. 그가 의심은 하면서도 인정은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로르카가 달리에게 우정 아닌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달리를 꼬드겨(!) 함께 파리로 간다. 파리에서 그 둘이 만든 영화가 바로 <안달루시아의 개>이다. 초현실주의 영화인데, 안달루시아가 바로 로르카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로르카는 그 둘이 자신을 욕보인 거라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셋의 우정보다는 달리와 로르카의 미묘한 관계를 많이 묘사하지만 어느 누구도(동성애자인 로르카마저) 그걸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저 둘의 우정이 깊다는 정도로만 다들 알고 있었다고 한다.(물론 로르카는 알려진 동성애자였기에 그 우정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다들 궁금했겠지만) 하지만 달리가 죽기 전에 쓴 자서전에서 로르카와의 우정이 아닌 사랑을 뜻하는 듯한 묘한 말을 남겨 영화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자가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 걸까? 잘은 모르지만 서두에서 적었듯이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통해 보면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저 사람이고 싶다.’는 욕구가 동경(憧憬)의 대상이 되어 그 자체로 그 안에서 강화되고 발전하며 특이한 관계를 보인 것처럼 보인다. 그건 분뇨 수거인을 처음 본 ‘나’의 감정과 같은 느낌을 로르카 역시 달리에게 느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리틀 애쉬》에서 로르카가 달리를 처음 본 장면은 이렇다. 어머니가 죽자 달리는 마드리드에 있는 왕립미술학교로 가서 천재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천재예술가‘가 꿈인 달리로서는 그가 지내게 될 마드리드의 숙소가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기숙사와 같은 분위기를 낼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단정하지 못한 단발머리에 마치 중세의 기사와 같은 복장으로 나타나 로르카의 시선을 받는다. 단정한 학생들 사이에 튈 수밖에 없는 달리의 복장은 그 후로도 그의 기이한 행동과 함께 자꾸만 로르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는 감정은 아니더라도 ’저 사람과 뭔가 통할 것‘이라는 느낌을 로르카는 가졌을 것이다.

『가면의 고백』에 등장하는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다. 다만 어린 시절 인생에 대해 품었던 관념이 세월이 흘러도 흔들림이 없었을 뿐이다. 그것에 대해 미시마 유키오는 작품 속에서 화자인 ‘나’가 어린 시절 세 가지 요소로 인해 이성인 아닌 동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는데 그 첫 번째가 분뇨 수거인이었고, 두 번째가 바로 잔 다르크다. 그림책에서 본 잔 다르트는 백마에 올라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말은 사납게 코를 벌름거리며 늠름한 앞다리로 모래먼지를 박차고 있고 잔 다르크는 몸에 걸친 백은의 갑옷에는 아름다운 문장(紋章)이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얼굴을 투구 사이로 내보이며 늠름한 자세로 칼날을 푸른 하늘로 치켜들고, ‘죽음’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것인지, 아무튼 어떤 불길한 힘을 지니고서 뛰쳐오르는 대상에 맞서고 있었다. 나는 그가 다음 순간 살해될 것이라고 믿었다. 서둘러 다음 페이지를 펼치면 살해된 그의 그림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림책의 그림이 무슨 겨를엔가 어느새 ‘다음 순간’으로 옮겨 가버릴 지도 모른다……”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잔 다르크를 완전한 남자로 오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며칠 뒤 간병인으로부터 잔 다르크가 ‘그’가 아닌 ‘그녀’라는 말을 듣게 된다.
“나는 뭔가에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인 줄 알았는데 그녀인 것이다. 이 아름다운 기사(騎士)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지금도 내게는 여자의 남장에 대한 뿌리 깊은, 설명하기 어려운 혐오증이 있다.). 그것은 특히 그의 죽음에 대해 내가 품었던 달콤한 환상에 대한 잔혹한 복수, 인생에서 내가 만난 최초의 ‘현실이 떠안긴 복수’와도 같았다.”고 고백한다.
한마디로 남자인줄 알았던 잔 다르크가 여자라는 걸 아는 순간, 이후로 그 그림책을 팽개치고 손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나’가 밝히는 요소는 땀 냄새였다.
“병사들의 땀 냄새, 그 바닷바람 같은, 황금으로 달궈진 해안의 공기 감은 냄새, 그 냄새가 내 콧구멍을 사로잡고 나를 취하게 했다. 내 생애 최초의 냄새에 대한 기억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그 냄새는 물론 바로 성적인 쾌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으나, 병사들의 운명과 그 직업이 품은 비극성, 그들의 죽음, 그들이 보게 될 머나먼 나라들, 그런 것에 대한 관능적인 욕구를 내 안에 서서히, 그리고 뿌리 깊게 눈뜨게 하였다.”
그렇다면 가르시아 로르카 역시 ‘나’가 가진 요소와 같은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이 프로이트의 논리처럼 성심리 발달과정에서 일어난 갈등의 결과일 수도 있고 말이다.
『가면의 고백』에서 ‘나’는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여자와의 관계에서도 ‘불능’을 보여주듯 뿌리 깊게 들어앉아 어린 시절의 관념이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동성애라기보다는 이상성욕에 관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리틀 애쉬》에서 달리가 보여주는 행동은 어떻게 된 것일까, 접촉공포증에 걸릴 만큼 달리를 상처 입힌 원인은 무엇일까? 달리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으니 매우 궁금해진다.

아무튼, 달리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의 관계를 매번 부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로르카는 <살바도르 달리에게 바치는 송가>를 지을 만큼 달리를 사랑했었다. 로르카가 총살당했다는 뉴스가 전해지던 날 달리가 보여준 기괴한 행동과 모습은 어쩌면 로르카에 대한 그 만의 화해방법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해 달리는 ‘타임즈’에 얼굴이 실렸단다.
『가면의 고백』을 쓴 미시마 유키오는 이 책이 워낙 사실적인지라 이 책으로 인해 ‘동성애자’로 오해받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년의 미시마가 몰입했던 우익사상에서 천황에 대한 ‘심정(心情) 속에 동성애적 요소가 짙게 느껴진다고 하니 『가면의 고백』에서 보이는 동성애적 성향은 어느 정도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겪을 지도 모르는 그런 성장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이야기를 연이어 읽고 보면서 재미있었다. 그들이 동성애를 했든 안 했든 그런 것보다 화가로서, 시인으로서, 작가로서의 천재성을 드러낸 그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이나 달리와 로르카의 《리틀 애쉬》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