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
토마 귄지그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처음 만난 작가였다. 아멜리 노통브의 뒤를 잇는 작가란다. 노통브의 시니컬함을 알긴 하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상은 유쾌한 이야기일 것이란 상상이었다. 하지만 표지의 그림이 홍보 문구의 "이제 당신 앞에, 남자의 마음이 속속들이 열린다."를 의미한다는 것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해했다. 맞다. 이 책은 남자들의 이야기다. 고독하고, 타인과의 소통이 두렵고, 무기력하며 자기중심적인 남자들. 내가 보기엔 하나같이 비정상적이지만 고개 돌려 찾아보면 주변에 한 사람 정도는 있을 법한 그런 인물. 고독한 남자 혹은 동물.
독특한 소설들이었다. 모두 7마리의 동물(!)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세상이 엿같다. 집 나간 아내를 기다리다 돌아오지 않자 '여자란 전부 우울증환자에 한심한 미친년'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사랑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는 욕구 불만의 사내, 엄마와 살며 주변의 모든 것에 짜증이 난 한심한 아들, 자신의 어리석은 신념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기구한 배우 등등 가련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인간들은 지겹고 짜증나고 구역질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힘이 든다. 딴엔 시니컬하게 잘난 척도 해보고 소심함을 벗어내려고 발버둥쳐보지만 뜻대로 되는 일조차 없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짐승 한 마리쯤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더러운 쥐새끼의 눈을 가진 남자나 어딘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으며 우리 안을 맴도는 표범을 연상시키는 수상쩍은 남자, 무미건조하고 따분하여 스스로 벌레 같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본성을 드러내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짓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나름의 욕구를 표출한다. 한마디로 메스껍다. 이렇게 살 맛이 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짐승(!)들을 보며 여자인 나는 자꾸만 헛 웃음이 나오는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작가 자신도 남자이면서 그런 남자들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풀어나간 작가의 글 솜씨가 그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뿐.
하지만 '뱃속에 뿌리내린 바오밥 나무만큼이나 커다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남자들의 삶을 엿보면서 안쓰러워지는 것은, 탈출구 하나 가지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지금, 바로,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한, 그들만의 발버둥이다. 가엾은 남자들, 그래서 그들은 고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