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디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2
레오폴도 가우트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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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아요. 그런데 이건 내 방송이에요. 내 목소리예요. 나라고요. 내가 찾는 건 1980년대에 방송된 비슷한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은 후부터는 갈피를 못 잡았다. 이젠 다 알았다는 예감을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혼란스럽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다 알았다고 하는 순간부터 다시 헷갈리기 시작한 셈이다. 할 수 없이 다시 펼쳐서 다시 읽었다. 그래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서너 번의 재 반복 후 내 나름대로 해석해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소설이란 읽는 사람 마음이니.

주말 오후, 제목과 표지의 으스스함이 나를 당기긴 했지만 슬쩍 훑어본다는 것이 빠져들고 말았다. 흥미로운 책들은 늘 그렇다. 훑어보다가 읽어버리게 된다. 더구나 이 책에선 짧은 장들이 빠져듦을 자극한 셈이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잡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스트 라디오>의 청취자가 되었다. 그건 그 누구라도 이 라디오를 듣는 순간 애청자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인데 <고스트 라디오>에 소개되는 청취자들의 경험담들은 한번쯤은 어디선가 들었던 괴담들인데다 어린 시절 할머니들이 들려주던 ‘무서운 이야기’처럼 혹은 우리가 공포 영화를 볼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영화를 감상하듯 무서워하면서도 들을 것은 다 듣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근심과 두려움을 이야기하려고 우리에게 전화해. 마음속으로 상상한 것이나 실제로 자신에게 벌어진 일, 혹은 벌어지길 바라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이야기가 재밌으면 모두가 즐겨. 설령 시시해도 최소한 전화 건 사람은 가슴이 후련해지지. 그리고 청취자들이 바라는 건 그런 이야기가 주는 놀라움이지. 자발성의 힘. 예측불가. 다른 사람들의 비밀이 선사하는 무한한 가능성 같은 것들 말이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공포를 귀로 들으며 내가 아님을 안도해하는 마음. 혹은 너의 이야기가 무섭지만 너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놀라움은 어릴 때 부모를 사고로 잃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마저 잃고 살아가는 호아킨의 비밀스런 과거를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마치 청취자의 괴기스러운사연을 듣는 것처럼. 

고스트 라디오』는 그런 재미와 흥미를 보여 준다. 이게 현실인지 상상인지, 또는 호아킨인지 가브리엘인지, 지금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아무도 모른다. 고대 중남미를 지배했던 부족 톨텍의 전설이 등장하고, 펑크 밴드의 으스스한 가사와 고스족의 패션을 하고 언더그라운드 만화를 즐기는 여자가 나오는가 하면 제목이 보여주듯 섬뜩한 해적방송 <고스트 라디오>의 생생한 라이브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배경에서 펼쳐지는 『고스트 라디오』는 청취자들의 기이한 사연 속에 호아킨이 경험하는 더 기이한 현상을 느끼며 책을 덮은 후에도 뭔가 찝찝한,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내가 제대로 책을 읽은 게 맞는 거야? 뭐 이런.

그러거나 말거나, 『고스트 라디오』가 정말 존재한다면 한번쯤은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주 어렸을 때 서울에 있는 라디오 주파수 찾다가 우연히 듣게 되었던 북한(!) 방송처럼 스릴 넘칠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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