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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며칠 전에 <여배우들>이라는 영화를 봤다. 원래 여자는 여자에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여자 이야기'에는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간다. 어쩌면 나 아닌 '다른 여자'에 대한 질투와 경쟁심, 동경 같은 것이 은연중에 내 맘을 파고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에서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꽤 흥미를 가지는 편인데 마침, 고종석의 이 책 『여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고종석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저자들이 세계의 이름난 여자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들을 피력하거나 혹은 그들의 전기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글들을 써오기도 했다. 여신이나 혁명가, 팜므파탈이나 조선의 악한 여자들까지. 그렇게 세계의 다양한 여자들을 알아왔는데 저자에 따라 그 읽는 재미가 달랐다. 특히 고종석이 말하는 여자들은 그들과 조금 다르다. 물론 여태껏 알아온 유명한 여자들도 많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여자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여자들이다.
'제인 마플'(아는가? 이름은 많이 들어왔지만 이 여자는? 하는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무라사키 시키부'(겐지 이야기라고 하면 아하! 하는 분들 있겠다.) '이화'(이건 정말 재미있는 선택인데 고종석이 말하는 여자들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결국엔 이화라는 여자보다 장미희라는 여자에게 더 관심이 갔던 것이 분명하지만.) '갈라 엘뤼아르 달리'(변동림을 떠올리며 비슷한 운명의 갈라에 대해 고종석이 말하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나중에 꼭 이 여자와 관련한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후지타 사유리'(맞다.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그 사유리다.).
또한 고종석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여자들을(측천무후, 사포, 마리 앙트와네뜨 등등) 말하기도 하고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여자들을(최진실이나 다이애나 같은) 떠올리기도 하며, 지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오프라 윈프리, 임수경) 여자들에 대해 사유하기도 한다.
고종석의 글을 읽은 것은 『도시의 기억』이란 책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문체가 좋다. 쉽게 읽히지만 난삽하지 않다. 굉장히 인문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감성적이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솔직하다. 그들을 찬양(!) 하지만 내면을 꿰둟어보는 듯 꽤 진지하고 깊이 있다.
고종석은 페미니즘 코드로 이 여자들을 무조건 옹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 역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여자가 아닌고로 고종석의 서른네 명의 여자들에 대한 생각들이 흥미를 끌었고 깊이를 얻었다. 인물의 중요도보다 취향과 변덕을 반영하고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해서 "역사에 기록되는 '행운'을 지닌 여자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주로 극단적 역할을 맡았던 이들" 이든 그렇지 않든 고종석이 말하는 여자들에겐 왠지 부쩍 관심이 간다. 여자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불어 이번 기회에 고종석의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나.
참고로, 내가 아주 맘에 든 여자는 오리아나 팔라치, 생전 처음 들어본 이름이고 그녀에 대해 고종석을 통해 처음 알았지만 굉장히 매력적이다. 뭐, 굳이 꽤 멋지게 나온 섹시한 할머니 모습의 그녀때문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 정도로만 멋지다면 좋겠다. 역시 이건 동경이다. 같은 여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