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많은 것을 공유한다. 음악과 그림, 영화. 또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책 속의 주인공을 공유하고 작가를 공유한다. 이런 공유는 의외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너와 내가 통한다는 의미도 있고 내가 던진 말에 알아듣는 말로 대답을 해 준다는 의미에서. 문득 책과 공유한 것들을 찾아봤다. 썩 훌륭한 독서가가 아니라 많은 공유물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이런 책도 있었군! 하고 놀란 책도 있었다.

 

그림책과 음악

조카가 태어나고 한동안 그림책은 내가 읽어대는 책들 중에서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 전엔 그림책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림책이란 단순히 아가들이나 읽는 ‘유치한‘ 그림들로 가득한 그저 그런 책이라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카와 단계별로 그림책을 읽어대면서 그림책이야말로 그 짧은 글과 그림에 인생의 깊이와 의미를 함축한 멋진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우습게’ 보던 그림책에 홀딱 빠져들어 좋은 그림책을 보면 조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사 모으기도 했었는데,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의 작가 김영욱은 그런 내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림책을 읽으며 음악을 떠올리는 일이다. 이건 음악을 많이 알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생각해보니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더구나 그가 추천하는 그림책들은 하나 같이 내 눈을 사로잡았고 추천하는 음악은 옳거니!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동안 그림책을 많이 읽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그림책은 언제 있었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좋은 그림책이 많았으며 어찌 이 그림책을 읽고 그 음악을 떠올렸을까 싶어 재능도(!) 많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여기에 소개하는 그림책들은 어른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직동과 통기타, 꽃과 왈츠, 뜬금없어 보이지만 어딘지 어울리는 망태할아버지와 핑크플로이드, 마리오네트 인형과 들국화. 빨간 고양이와 카르멘까지.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림책과 음악이 공유한다. 더불어 조금씩 소개되는 책이야기와 영화까지. 뭔가 어수선해 보일 것 같으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글이 부담스럽지 않게 읽힌다.

‘찬란한 우리의 생을 축복하는 음악과 그림책의 앙상블!’ 잊고 지내던 그림책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우리네 인생이 찬란하고 축복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살짝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책과 그림

그림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림의 깊이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파헤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우연히 보게 된 그림을 내 식대로 해석하고 바라볼 줄은 안다. 그런 까닭에 그림을 보여주는 책들을 좋아하고 그림이 나온 책들을 가끔 찾아 읽고 있는데 그런 내 구미에 딱 맞는 책을 그림 ‘볼’줄 아는 여자 곽아람이 소개한다. 그녀가 읽은 수많은 책들과 공유한 그림들을 보노라면 공감이라는 두 글자가 무수히 많이 머릿속에서 떠돈다. 어쩜 이렇게 그 책에 딱 맞는 그림을 골라낼 수 있을까. 따라하고 싶어지지만 그림을 ‘볼’줄 몰라 이내 포기를 했다.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는 “문학과 그림이라는 두 장르의 예술을 함께 즐김으로써 삶에 자그마한 위안을 얻은 한 개인의 체험기”라고 저자가 말했다. 누구나 책을 읽다가 다른 장르의 공통점을 찾기도 하는데 곽아람은 그 공통점을 그림에서 찾았다.

허먼 멜빌의 『바틀비』를 읽고 에드워드 호퍼의 <소도시의 사무실>이란 그림을 떠올린 그녀, 글을 읽어내려 가다보니 “I would prefer not to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란 말을 던지고 묵묵히 제 일만 하는 바틀비의 모습이 호퍼의 그림 속 남자와 무척이나 닮은 것이 그보다 더 맞는 그림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에밀리를 위한 장미」에서 죽은 애인과 40년 동안 같이 지낸 에밀리의 모습과 영국 시인 엘리자베스 베릿 브라우닝의 시 「궁정의 여인」에서 모티프를 얻어 그렸다는 아서 휴즈의 <그건 피에몬테 사람이었네>는 여자의 무표정한 듯 애절한 눈빛에서 에밀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니 그야말로 적절한 책과 그림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책을 읽지만 아무나 그림을 상상하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곽아람이 보고 느끼고 기억해내는 책과 그림은 그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요리와 책

나도 요리라면 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요리 뿐만 아니라 음악도 좋아하고 영화와 그림에도 관심이 많다. 그렇다면 오늘 소개한 모든 책들에서 보여준 주제들을 한번쯤 생각해봤음직도 한데 그러지 못했다. 난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줄은 모르는 사람이다. 영화를 볼 때면 영화만 보고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만 듣는다. 물론 책을 읽을 때는 당연히 책만 읽는다. 한데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요리도 나오고 영화도 나오고 음악도 나오는데 그것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나도 책 한 권 냈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이번 책은 책 속에 나오는 요리를 소개하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요리를 다룬 책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평범한 나와 같은 독자들은 그 요리를 그 책 속에서만 보고 만다. 한데 『손녀딸의 부엌에서 글쓰기』의 저자 차유진은 그렇지 않았다.  

책을 한 권 읽어도 그 속에 담긴 요리들을 찾아냈다. 하루키의 책에서 샌드위치와 햄버그를 레이먼드 카버의 책에선 계피빵을, 현진건의 책에선 설렁탕을 기억해냈다.

또한 미시마 유키오의 『사랑의 갈증』은 나도 읽었지만 차유진이 말하는 대목은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이럴 수가! 어쨌든 차유진은 『사랑의 갈증』에서 에쓰코가 멍 때리며 만든 고구마(감자?) 요리을 기억하며 미시마 유키오의 이력을, 요리 학교에서 겪은 한 일본 여자 아이의 ‘에쓰코스러운‘ 일상을 술술 풀어낸다. 감자가 들어 간 일본 요리 ’니쿠쟈가‘의 레시피는 덤이다. 또 김연수 작가의 『꾿빠이 이상』에 등장하는 이상의 마지막 가는 길에 멜론인지 레몬인지 먹고 싶었다는 부분을 인용하며 지금도 먹기 힘든 멜론을 그 시대의 과연 먹을 수 있었단 말인가, 의문을 갖고 자료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눈 후 돌아가신 외숙모의 이야기를 곁들이며 외숙모의 제육볶음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렇듯 책을 읽으며 각자가 느끼는 생각들은 다르다. 어쩜 자기 기호에 맞게들 떠올리는지. 더불어 우리 같은 독자는 좋기만 하다. 내가 읽은 책에서 그들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같이 공감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책도 읽고 싶고, 요리도 만들어보고 싶다면 이 책,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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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adersu 2009-11-24 10:28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재니스 리가 아주 소탈하고 재미있었답니다.
그리고 저 말은 칭찬이죠?ㅎㅎ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