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릴 때 사진 찍히는 걸 좋아했었다. 그건 아마도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들의 모델은 항상 그들의 아이들이었을 테니 다양한 장소에서 포즈를 취하게 하는 아버지 덕분에 언제나 늘 사진은 찍히는 거라 생각했었을 거다. 그건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마도 실물보다 사진이 덜 예쁘게 나왔으면 찍힐 생각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사진을 찍으면 항상 실물보다 더 잘 나왔다. 그래서 남들은 안 찍으려는 사진을 친구들의 카메라 앞에서 무수히 많이 찍혔다. 나중엔(지금이야 디카가 있어 저장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사진을 정리하는게 겁이 날 정도였다. 매해 앨범이 두어개씩은 생겨났으니 말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는 조금씩 사진 찍히는 걸 거부하기도 했지만 디카가 생긴 후로는 또 다시 친구들의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민다. "한 장의 사진은 단숨에 세월을 되돌려 자신과 힘겨워 싸움을 벌였던 그 순간으로 이동시켜준다." 라는 조세현 작가의 말처럼 그 사진 속에는 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은 추억들이 자리잡고 앉아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시절의 그 세월로 나를 데리고 가기 때문인데 가끔 사진을 보며 회상에 잠기다보면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살짝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조세현의 얼굴』을 읽으면서 사진에 대해 새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디카의 보급으로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조차 구별하기 힘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진의 기술을 터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문가의 마인드는 다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것'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찍는 게 아니라 그 사진 속에 그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짜 전문가라는 것을 『조세현의 얼굴』에서 볼 수 있다. 

중국 소수민족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하며 찾아간 중국 시안의 사람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을(백인도 흑인도 아닌 우리하고 별반 차이가 없는 중국 사람의 얼굴을) 찍은 책이 뭐 그리 멋지겠냐마는 그의 사진엔 상대의 마음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고추를 파는 상인의 해맑은 웃음에서, 아이를 목에 태우고 웃고 있는 아버지의 까만(!) 손톱에서, 이발을 하고 있는 거리의 미용사의 수줍은 미소에서, 다음에 만나면 친구가 될 거라며 호탕하게 웃고 있는 버스 차장의 모습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조세현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사진이 갖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사람은 삶의 준말이라며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그는 안 그래도 요즘 사진에 대해 관심이 부쩍 많아진 내게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히 원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연예인의 인물 사진이나 찍는 줄로만 알았던 그가(상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이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은 입양을 원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수년 째 찍어왔고, 소수 민족이나 지적 장애우들의 사진을 찍어준다는 이야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사진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능력을 가졌는데 나는 보이는 것조차 제대로 볼 줄 몰랐던 모양이다. "사람의 표정을 담는 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데 이젠 나도 사람의 얼굴을 사진에 담을 때는 그 사람의 삶을 상상이라도 하며 담아봐야 하겠다. 문득 어릴 때 찍은 사진을 지금 들여다 본다면 그땐 보이지 않던 그 무엇을(그게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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