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을 빌려 사람을 읽는다, 표지에 실린 글을 읽는 순간 묘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어떻게 읽는단 말인가? 그 의문은 책을 넘기면서 사라졌다. 살아 있는 도서관 <리빙 라이브러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잘 알지 못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된 행사”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읽은 소설집에서 <리빙 라이브러리>에 관한 단편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단편을 읽을 때만 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읽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사람도 읽을 수가 있는 거구나.’ 다르게 생각하면 현재의 우리가 얼마나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기에 이런 기획이 나왔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긴 과거라고 해서 소통이 잘 되었거나 대화가 통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놀라운 것은, 이 기획은 영국에서 시작된 거다. 영국이라면 어쨌든 동양에 사는 우리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의사소통이 잘 되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조차 편견의 틀에 갇혀 산다는 거다.  

첫 단편(!) 싱글맘인 크리스틴을 읽어보니 우리와 다를 게 없었다. 십 대 중반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남자와 관계를 가져 아이를 갖고, 그걸 알게 된 엄마의 반응이나, 그런 관계에서 시작된 둘의 관계는 당연하다는 듯이 삐끗거리고, 헤어져 혼자 아이를 키우다보니 그제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지극히 평범하여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일어나는 그런 일들이 영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어린 싱글맘이라는 이유로 받았을 크리스틴의 상처. 하지만 이 책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상처를 딛고 일어선 크리스틴의 현재 모습이다. 모든 책들이 해피엔딩일 수는 없지만 싱글맘 크리스틴의 책은 어쨌든 해피엔딩. 싱글맘을 겪어보지 않은 독자야 그 맘을 잘 모르겠지만 비슷한 처지의 싱글맘들은 별 다섯 개짜리 리뷰를 쓰지 않을까 싶다. 다시 생각해보니 사람 사는 것은 서양이든 동양이든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싱글맘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대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즈비언과 혼혈, 휴머니스트와 나이 예순이 되어서야 새 인생을 찾겠다고 가출한 할머니, 신체 기증인과 완전채식주의자 등등 너무나 대중적인 혹은 너무나 독특한 사람책들이 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대출하고 싶었던 책은 바로 휴머니스트였다. 휴머니스트, 과연 어떤 사람이 휴머니스트라고 말하는 걸까? 알고 보니 전반적으론 크게 다르진 않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휴머니스트와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 대출을 기다리던 휴머니스트 한나는 종교에 반기를 드는 무신론자이다. 무신론자. 그렇다. 영국에 사는 ‘휴머니스트’들은 종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교회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파워가 강력하기 때문에 생긴 셈이다. 한나가 생각하는 사회란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을 존중하고, 한 사람, 한 개인의 의사와 결정을 존중할 때 훨씬 긍정적인 사회가 된다”고 믿는데 영국 사람들은 종교에 너무 얽매어 산다는 거다. 그렇다면 아직도 종교가 없는 나도 휴머니스트?^^ 내가 생각했던 휴머니스트와는 많이 달랐지만 인권을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이 단편의 별표는 네 개!^^ 

책을 읽고 나서 만약 내가 <리빙 라이브러리>에 간다면 어떤 사람책을 대출하고 싶을까? 생각해봤다. 편견을 가진 사람책을 대출해야하니 부자들? 정치인들? 이기주의자들? 목소리 큰 사람들? 뭐 그런 사람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어쩐지 나는 그런 사람들은 대출하고 싶지 않다. 읽고 나면 편견이 사라지기보다는 짜증만 생겨서 별 하나 찍고 말아버릴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대출하고 싶은 사람책은 내가 편견을 가진 사람보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극히 소심한 A형에 게자리인 나는 별자리나 혈액형 따위의 결과를 보면 항상 남 얘기 잘 들어줘서 카운슬러가 제격인 사람이라고 나온다. 그런고로, 감성적인 사람, 아픔이 많을 것 같은 사람, 겉으론 완벽한 척하면서 속은 뭔가 쓸쓸한 그런 사람책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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