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판을 하고 목이 빠지게 기다린 책이었다. 하지만 막상 책이 도착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도대체 무얼 읽었는지 모르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모든 글이 머리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왔다. 마음으로 들어온 글들은 내 눈으로 전달되어 흐릿한 시선을 만들어냈고 그 흐릿함으로 인해 도저히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건 이 책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내 사적인 일들의 한 부분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것인지 내 맘을 되새겨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책을 읽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멍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저 생각나는 것은 이 책이 내게 온 날부터 나의 세계가 조금 바뀌고 말았다는 사실 뿐.
그래서 이 책을 읽었으되 제대로 읽었는지도 모른 체 우울한 내용들만 머릿속에 주입이 되고 책이 왜 이리 우울한 거야, 투덜투덜 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읽다 보니 그 우울함 속에 그걸 떨쳐낼 수 있는 희망이 보였고 그 희망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되는 양 조금이나마 나를 위로해주었다. 만약, 하필이면 그때 읽은 책이 이 책이었고 이 책의 내용이 슬퍼서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눈물을 줄줄 흘렸다면, 그래서 결국은 끝까지 슬프고 슬픈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다면 나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케이케이는 죽어버렸지만 케이케이의 젖은 몸이 있어 그 작가가 살아갈 수 있었고, 바닷물에 빠져서야 마음껏 울 수 있었던 그녀처럼, 또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는 작은 메시지가 있었기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서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이젠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이 되었고 이젠 뒤바뀐 세계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세월이 흐른 후 그날의 일을 그때 가서 기억해낸다면(물론 앞으로 세월이 흘러도 이 책이 내게 온 그 날, 내게 일어난 변화는 절대로 잊지 못하겠지만)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모두들 힘을 냈고 우린 희망을 이야기했으며 원하는 대로 되고 말았지. 이제와 생각하니 추억이구나! 뭐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테니.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니까.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