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문득 친구의 구매리스트를 보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동안 요리에 살짝 올인하여 뭐든 맛있는 것만 먹으면 집에 와서 제 식으로 만들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땐 제가 요리사가 안 된 걸 후회하기도 했었죠. 간혹 친구들이 왔을 때 국적을 알 수 없는 요리를 만들어 먹였는데 다들 맛있다고 치켜세우는 바람에 그렇게 믿었던 거랍니다. 하긴 오래 전에 동생들에게 떡볶이나 라면을 끓여주면 정말! 맛있다고 분식집 차리라는 소릴 듣긴 했었어요.ㅋ 지금 생각하니 동생들이나 친구들 모두 맛없다고 하면 다시는 안 해 줄 것 같으니까 침 발린 말을 해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뭐 칭찬엔 고래도 춤을 춘다니 혼자 착각하더라도 좋은 말이거니 하고 있습니다.
암튼, 그렇게 요리를 좋아하던 제가 요즘은 바쁘다는 이유로 집에서 밥 해먹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간혹 요리책을 보거나 맛있는 요릴 먹으면 집에 가서 만들어 볼 궁리를 하죠. 그래서일까요? 요리와 관련된 책을 보면 일단 관심이 갑니다. 더구나 그 책들이 여행을 하면서 먹어본 혹은 만들어본 그 나라의 요리이거나 책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요리를 집어넣은 책이거나 하면 무조건 관심1호 대상이 되는 거죠. 어제 친구의 리스트에서 그런 구미 당기는 책을 봤어요. 같이 묶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최근에 나온 제 관심을 받은 두 권의 책을 소개하렵니다. 한 권은 구입을 해서 읽은 책이고, 한 권은 친구의 글로만 만난 책인데 미리보기를 해 보니 스케치가 되어 있어 또 스케치 좋아하는 제가 혹! 하게끔. 그래도 구입을 하기 전엔 항상 실물을 확인해야겠지만요. 아, 책 소개하며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럼, 두 권의 요리(!) 책입니다.
<채널예스>에서 연재를 했던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연재를 하는 글들을 잘 읽지 읽는 저로서는 들어가서 읽어본 적이 한번도 없지만^^;; 제목은 본 기억이 나더군요. 저자는 푸드칼럼니스트이자 전문요리사라고 합니다. 그런 저자가 책을 읽으며 책 속에 나온 요리를 키워드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냈어요. 전 이제 하나의 이야기를 읽었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드랜드』, 이 책을 저도 오래 전에 읽은 것 같은데 도통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하루키야 요리를 즐길 정도로 요리 마니아이고 그의 작품 곳곳에서 요리를 소개하는 작가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지요.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서 한번도 그 요리들을 눈여겨보질 않았네요.
저자는 하루키를 좋아하는 모임에서 닉네임을 이 책에 나오는 '손녀딸'로 정했다고 합니다. 책 제목에 나오는 '손녀딸'이 저자의 닉네임인 셈이죠.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드랜드』에는 굉장히 수많은 음식 이야기가 나온다고 손녀딸은 말합니다. "미소 된장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소시지를 구워 위 확장증인 도서관 사서와 나눠 먹거나 ‘손녀딸’과 ‘나’가 같이 사먹는 치즈 버거, 그리고 의식이 소멸되기 전에 도서관 그녀와 함께 먹는 무시무시한 양의 이탈리아 요리들, 그리고 맥주.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요리는 뭐니뭐니해도 바로, ‘손녀딸’이 ‘노박사’를 도와 브레인 워시를 하는 ‘나’를 위해 만든 샌드위치다. 손녀딸은 다른 요리도 곧잘 하지만 샌드위치만큼은 누구보다 잘 만드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자르기 위해서는 아주 잘 드는 칼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은 1988년 작 『댄스 댄스 댄스』의 샌드위치를 아주 잘 만드는 외팔이 시인, 딕 노스의 입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재료의 신선함과 맛을 내기 위한 비율, 게다가 잘 드는 칼을 이용해 말끔하게 썰어내기까지 해야 하는 샌드위치는 결코, 쉬운 요리가 아니다. 쉽게 쓱쓱 만들어낼 순 있지만 제 맛을 내긴 힘들며 내용물이 흐트러지지 않고 빵의 가장자리가 회처럼 깨끗이 잘려야 완벽에 가까운 샌드위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와우! 저도 요리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니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책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누군가 그 책을 읽고 호감이 가는 문장을 발견하고 꼬리를 물어 다른 책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분명 나쁜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책에 대해 말하는 책들 중에서 말이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제게 또 다른 많은 책을 추천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마다 하나씩 읽을 생각으로 침대 옆에 두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나오는 요리 레시피가 어째, 잠들 밤에 식욕을 돋우어서 고민 중입니다.ㅠㅠ
또 다른 한 권의 책은 바로 이 책입니다. 제가 어제 친구의 구매 리스트에서 본 책이죠. 제목에서 부터 뭔가 호기심을 일으키는데 제목보다 더 궁금증이 난 것은 표지였던 것 같아요. 다른 책과 다르게 세로(?)로 된 제목과 그림, 그리고 뒷표지를 꺼내 앞을 감싸면 바로 주소 적어 누군가에게 선물로 보낼 수 있는 독특한 북커버때문이에요. 미리보기를 통해 속을 보니 와우! 제가 좋아하는 스케치로 레시피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사진작가이자 스페인요리 전문가라는 저자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페이지 수도 적고 가격도 나쁘지 않아 오프에서 확인하지말고 그냥 사 버릴까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친구가 다 읽고 느낌을 받기까지 기다리기가 성격 급한 저로서는 지치기도 하고.ㅎㅎ
책소개를 보면 스페인에서 만난 스승(?)에게 안달루시아의 요리 비법을 받아와 책으로 엮어냈다고 합니다. 그 사이 사이에 사진작가인 저자가 찍은 아름다운 스페인의 사진과 그곳에서 보고 경험하고 느낀 점들을 적은 에세이들이 들어 있대요. 책소개만으로는 당장 구매하게끔 만든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목차를 살펴보니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들어 있어요. 빠에야와 샹그리아, 홍합과 가스파쵸!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들일 것만 같은 예감이 마구 드네요.
저자는 요리의 정의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좋은 끈'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여 맛있는 요리(대부분이 처음 시도하는 퓨전요리를 그들로 하여금 시식하게 하는 것이지만) 만들어 줌으로써 우리들 간에 놓여 있는 작은 벽들을 하나씩 허물었던 것 같아요. 그후로 좀 더 친밀해지고 공유할 부분이 생기고 좀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런 점에서 요리에 대한 정의를 내린 저자의 말에 대공감이 갑니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저자는 스페인 요리 전문 레스토랑을 개업했다고 하는데 홍대에 있는 '알바이신'을 찾아보니 허걱! 우리 동네네요. 문득 엊그제 친구가 스페인 요리 맛있다고 말한 집이 그 집이 아닌가 싶네요. 다음에 모임이 있으면 꼭 한번 가봐야겠다 싶어요.(책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맛집이 되어 버린^^;;;)
요리 이야기를 재미있게 버무린 책이 비단 이 두 권의 책밖에 없는 것은 아닌데 신간 중에 제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책으로 찜해보고 나니 이 두 권의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