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로버트 스윈델스의 책을 읽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작가가 누군데? 할지도 모르겠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작가도 아니고 제목만 대면 알 만한 작품을 쓴 작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작가를 운운하는 것은 그가 쓴 세 권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차례차례 번역이 되었고 그 작품이 나올 때마다 내가 읽었으며 읽고 나서는 조금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10대들을 위해 글을 쓰는 청소년 작가란다. 청소년 작가인데, 그가 쓴 작품들을 읽으면 이게 과연 청소년들을 위한 작품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영국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의 작품은 자극적이고 충격적이며 놀랍다. 소재도 그렇지만 스토리 역시 그렇다. 어쩌면 그렇기에 내 눈에 띄었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눈독 들여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작품인 <사라지는 아이들>에서 그는 가정 폭력에 못 이겨 가출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 소년은 가출하여 노숙자가 되었고 연쇄 살인범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1993년 로버트 스윈델스가 이 책을 펴냈을 당시 영국인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가출 청소년과 홈리스 청소년들을 대하는 시선에는 냉대와 혐오만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기보다는, 싸잡아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어 비난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영국과 우리나라는 문화가 다를 것이라 지레 짐작을 했었는데 청소년들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나라가 따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소재를 다룬 작가의 소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 책은 그해에 카네기 상을 수상했으므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에는 딱 좋았을 테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훈적이거나 읽고 나면 어떤 깨달음을 받을 수 있는 소설들을 좋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외였다. 가출 한 아이들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고 참혹하여 설마, 아니겠지 생각하며 외면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노숙자가 된 가출 소년 링크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느끼는 감정들에서 청소년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누더기 앤>은 심각한 왕따를 당하던 마사가 그 왕따의 근본적인 원인이 부모의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강제로 훈육당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친구인 스콧을 만나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실상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약간의 스릴러 형식의 소설로 로버트 스윈델스의 책 중에서 가장 긴장감을 준다. 이 책은 종교에 빠진 부모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보통의 아이들처럼 자라지 못하는 마사를 통해 어린 아이일지라도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역시 청소년 소설로서 많은 부모들이 꼭 민감한 아이들에게 꼭 그런 부모를 보여줄 수 있느냐고 따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부모들이 책을 고름에 있어서도 아이가 악하거나 아이가 나쁜 짓을 저지르는 내용의 책들은 다들 기피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역시 착한 청소년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집안의 엄격한 규율과 혐오라는 비밀에 짓눌려 살아가던 딸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마사의 용기는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어린다는 이유로 당하고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작품인 <땅속에 묻힌 형제>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핵전쟁이 터지고 ‘운 좋게’ 살아남은 형제의 이야기다. 누구나 한번쯤은 핵폭발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길 들어봤을 것이다. 아니 영화로도 우린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살아남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상황. 그래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이기심이 불러일으킨 엄청난 재난을 목격했다. 살아남은 자들 속에서 권력이 재등장하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나누어지며, 뺏고 뺏기며, 사람의 죽음을 개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세상. 단 하나의 희망조차도 품을 수 없게 만드는 상황들. 정녕 미래는 없는 것일까? 좌절하게 만들고 마는 그런 세상.
로버트 스윈델스는 핵전쟁으로 망가진 지구의 삶을 보여주면서 미래에 이 지구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핵전쟁이야말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핵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며, 또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