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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 변종모의 먼 길 일 년
변종모 지음 / 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또 한 권의 여행책을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가지지 못한 내게 여행책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나만의 여행법이다. 외롭거나 우울할 때 여행자들의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다 보면 어느 새 그런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난치병'에 걸린 여행자들로 인해 나는 치유 받고 살아가는 셈이다.
칠레에 있는 <달의 계곡>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아르헨티나 <페리토모레노>의 빙하를 상상한다. 세상의 끝이라는 <우수아이아>에서 존재하지도 않은 등대를 찾아다니고, 퀘사스, 퀘사스, 퀘사스를 들으며 탱고를 추고 있을 나를 떠올린다.
이렇듯 여행책에도 나름 궁합이 있어 나와 맞는 여행자를 만났을 때면 내가 마치 그곳을 다녀온 것 마냥 기분이 좋다. 또 여행자의 일상에서 데쟈뷰를 느끼고 여행자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에 공감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여행을 떠나지 못해 아쉬워하던 마음도 사라지고 언제가 그 여행자처럼 나도 꼭 한번 여행을 해 보리라 다짐하기도 한다.
여행도 병인 이 남자의 여행 역시 내겐 온통 공감 투성이의 글들로 가득하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만약 여행을 떠나고 돌아왔을 때 그럴 수만 있다면 나.도. 떠.나.고.싶.다.
북미를 거쳐 남미와 서남아시아로 떠난 그의 여행 기록은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광 사이사이로 여행자의 사유가 곳곳에 담겨 있다. 쿠바 <비날레스>에서 임종을 보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떠올리고, 젊은 아버지와 길을 가던 아이를 보았던 파키스탄의 비탈길에서 '천둥산 박달재'를 부르던 아버지를 추억한다. 또 머물게 된 숙소의 룸 넘버를 보며 팔 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보냈던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인도 <다르질링>에서는 군대 있을 때 면회 왔던 둘째 형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는 줄도 모르고 끝을 낸 그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돌아와 다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글을 쓸 때는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끔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것에 혼자인 것이 익숙한 내게 유독 여행만 그렇지 못한다. 그게 웃긴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엔 나도 꼭 한번 혼자 여행을 떠나야지 마음 먹는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뿐이다. 아직도 나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노쇠한 부모님이 마음에 걸리고, 서툰 외국어 실력이 자신 없다. 여행은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데 난 아직 나를 되돌아보고 싶지는 않은가보다. 그래, 되돌아보기보다는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거겠지.
여행도 사랑도 병인 변종모의 먼 길 일 년, 문득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잘 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