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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오래 전에 나도 우리나라 고전을 한번 읽어보겠다고 서포 김만중의『구운몽』을 산 적이 있었다. 지금은 왜 뜬금없이 『구운몽』을 샀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내 구매 습관으로 봐서는 그 당시 기사나 칼럼에서 『구운몽』과 관련한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고전의 문체나 옛 글의 어려움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스토리만 듣고 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겨우 두어 장 넘기고 아직도 책꽂이 구석에서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테니. 그에 비하면 이 책에도 짧게 소개가 되지만 5권짜리 『옥루몽』은 꽤 흥미롭게 읽은 셈이다. 요즘으로선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한 십대 중반 아이들의 판타스틱한 무술 실력과 철저한 권선징악, 그리고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다섯 선녀들. 한마디로 스펙타클하면서 문체가 주는 즐거움이 나름 재미있어 즐겁게 읽었던 거다. 그러고선 실로 오랜만에 읽은 고전되겠다.
『옛 소설에 빠지다』, 소설 좋아하는 나로선 ‘옛 소설‘이라는 제목에 ’혹‘해버렸다. 옛날 소설들은 과연 어떨까? 현대의 소설처럼 흥미롭고 재미있을까? 궁금증이 더했다. 책을 받자마자 첫 이야기인「이생규장전」을 읽으면서 나는 제목 그대로 옛 소설에 빠지고 말았다. 귀신과 사통하는 소설이라니, 현대로 따지면 공포 스릴러 소설 정도 되겠지만 고전에서 보는 귀신은 아름다울 뿐이다. 얼마나 남편이 걱정되었으면 죽어서 나타났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된 남녀의 사랑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오싹하면서도 흥미로웠던 작품은 「강도몽유록」이었다. 병자호란때 강화도에서 목숨을 잃은 여인네들의 통곡에 가까운 한은 그야말로 으스스했다. 역사적 사건을 두고 도망가고 제 한 몸 건사하기에 바빴던 관료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여인네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꿈이라는 걸 빌어 이런 이야길 했을까 싶다.
또 「오유란전」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면서 코믹하고 유쾌했고, 「적성의전」이 보여준 형제의 선악구조와 인과응보는 종교적인 색채가 들어갔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었다.
이렇듯 남녀의 사랑이야기에서부터 전쟁, 그 시대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양반들의 행태와 당대의 날카로운 풍자까지 모두 4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옛 소설에 빠지다』는 현실적인 이야길 다룬 것은 물론이고 환상적인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저자가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담백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놓아 훨씬 읽어내기가 수월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비슷한 다른 이야기들을 읽어보도록 유도함으로써 고전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여주고 궁금증을 심어주었다.
책을 덮으면서 우리가 고전을 멀리하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건 아마도 어렵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려운 고전이라도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문체를 사용한다면 베스트셀러로도 충분히 나올만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아무튼, 간만에 우리의 고전에 푹 빠져 보낸 며칠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