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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의 슬픔
테즈카 오사무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양쪽 머리가 뾰족 올라간 아톰의 얼굴이 담긴 표지를 보면서 문득 그리움과 궁금증이 같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에 한번은 본듯한 느낌의 아톰에 대한 기억과 제목에서 주는 '슬픔'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어릴 때 이 만화를 봤다면(지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어렸기 때문에 '만화'로서만 기억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만화 속 주인공(늘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용사)이 슬퍼할 일이란 것은 그다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왜 슬퍼?
책을 펼쳐보니 난 그동안 아톰에 대해 몰랐던 게 틀림없다. 물론 어릴 때 <우주소년 아톰>을 보긴 했겠지만 그것뿐이었다. 아톰을 탄생시킨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나 그 이후에 그가 그린 또 다른 만화를 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난 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아톰을 그린 데즈카 오사무의 글을 읽으며 나는 무척 놀라고 말았다. 여기에 실린 글들이 정말 20여 년 전에 쓰인 글들이란 말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톰이 탄생한 해는 1950년 초인데 그때 이미 데즈카 오사무는 "황당무계한" 만화를 그렸으니…
사실, 내가 그렇게 놀란 데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위험에 처한 지구의 미래를 데즈카 오사무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과 아이들의 교육환경에 대한 그의 예견이 지금 우리나라 교육의 현상과 너무나 일치하기 때문이고, 그가 얘기하는 생명공학, 환경오염, 전쟁과 평화, 우주에 관한 데즈카 오사무의 생각들이 예언자처럼 들어맞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데즈카 오사무는 그 시기에 할 수 있었을까?
데즈카 오사무는 미래의 예측에 대해 "If의 발상"이라고 말한다. 모든 공상이 의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만약 ~라면", 한 시간 뒤든 1년 뒤든 미래는 미래이므로 상상하고 그 해결책을 미리 생각해본다면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나는 SF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과연 우리의 미래에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기도 했었고, 그런 모든 이야기들은 오로지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SF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어쩌면 과학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데즈카 오사무처럼 과학적 기술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더라면 나 역시^^;;) 하지만 이 책 『아톰의 슬픔』을 읽으면서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데즈카 오사무가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는 아니지만 그의 바라보듯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온통 의문투성이 일테니까 말이다.
암튼 만화에 이토록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도 그러한데 아톰이 태어나던 해는 오죽했을까? "황당무계한" 그의 만화에 얼마나 말들이 많았을까? 책을 덮고 나니 그제야 '아톰의 슬픔'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소통'은 인간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공상과학만화들을 재미로만 볼 일이 아니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데즈카 오사무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