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주말입니다. 전 내일 춘천에 갈 거예요. 떠나가는 가을을 배웅해주고 올 생각이랍니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난다는 기대는 일주일을 즐겁게 만들죠. 저도 이번 주 내내 내일을 기다리며 즐거웠답니다. 옷은 뭘 입고 가지? 지루할 차 안에서 읽을 책으론 어떤 책이 좋을까? 독서가 위험하다는 책을 가져갈까? 집 나갔다는 엄마를 찾으러 가 볼까? 즐거운 고민을 하다가 만화책을 들고 가기로 했답니다. 바로 이 책이죠.

하워드 진입니다. 미국역사입니다. 그리고 만화입니다.『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민중이나 미국역사에 관심이 없던 저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죠. 하워드 진, 한번 정도는 읽어주어야 할 이 시대가 낳은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워드 진을 읽지 못하던 저에게 이 만화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어젯밤에 살짝 시작 부분을 읽었습니다. 미국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궁금증과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를 알고 싶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더군요. 그 밤에 다 읽어버릴 것 같아 바로 덮어버리면서 책장에 꽂힌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라는 책으로 눈길이 가더군요. 미국의 역사는 인디언의 멸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오늘은 14일이니(이런 것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잘 하던 행동이었는데 말이죠.^^;) 14쪽을 펼쳐보겠습니다. 이런 말이 나오는군요.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든 말이기도 합니다. 좀 길지만 써보겠습니다. “우리는 예전에도 그랬다. 이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며 구시대의 행동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는 베트남에서 네이팜 탄(넒은 지역을 불바다로 만드는 유지소이탄)과 집속폭탄(폭발시 금속파편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폭탄)으로 폭격을 하며 농촌마을에 테러행위를 저질렀다. 우리는 또한 칠레,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와 아이티의 독재자와 암살부대를 지원하였다. 이라크에서는 우리 미국이 내린 경제봉쇄의 결과로 5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죽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전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행동에 희생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우리에 대한 적개심에 대해 생각해봐야만 한다. 정치인들과 언론이 만들어 낸 전쟁의 당위성이야 어찌되었든 우리는 결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혀야만 한다.” 내가 이 책을 읽겠다고 하니 옆에 있던 친구가 말하더군요. 완전 보수주의자이신 울 아버지가 보시면 한 소리하시겠다고.ㅋ


이번엔 타블로입니다. 『당신의 조각들』, 처음 타블로가 소설집을 낸다고 했을 때, 솔직히 속으로 픽! 했습니다. 뭐야, 가수나 할 것이지. 웬 소설? 연예인들은 조금 유명해지면 전부다 책을 내는구나!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했더랬죠.(사실 글 잘 쓰지만 등단을 못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못 내는 숨어 있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읽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요. 하긴 제가 안 읽어도 책은 엄청나게!(불황이라는데도) 팔리고 있어서 신춘문예든 문학상이든 그런 것은 제쳐두고 이젠 가수로든 연기자로든 유명해지고 난 후에 볼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무튼 그런 불만을 안고 어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전 불만이 있어도 내 손에 책이 들어오면 일단 읽어줍니다) 도대체 얼마나 잘 썼을까? 잔뜩 의심을 품은 채 말이죠. 근데 말이죠. 하하;; 전 이 책을 기획한 출판사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아무리 스탠포드를 나오고 창작문예에, 영문학 석사를 받은 타블로의 소설집이라고는 해도 사실, 십대 후반에서 이십 대로 넘어가는 그 시기에 습작 삼아 쓴 소설인데 천재가 아닌 이상 뭐가 그리 잘 쓴 소설이겠어요? 하지만 책을 펼치면서 전 ‘멋지다!’했습니다. 왜? 이 책은 연예인이 쓴 소설이기에 너무나 ‘연예인스러운’ 편집들이 기막히게 좋았던 거죠. 만약 우리의 여느 문학 소설집처럼 활자만 빡빡하게 넣어 소설집이라고 내 놓았다면, 그래서 읽었는데 이게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책은 저어 멀리 확! 던져버리고 말았을 거예요. 하지만 전 다 읽었답니다. 그것도 아주 재밌게 읽었어요. 김경욱 작가는「위험한 독서」에서 소설의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소설마다 나오는 주인공이 꼭 타블로를 연상시켰습니다. 그 시절, 그 나이에 누구나 고민하고 의문을 가져보았을 불안함, 외로움의 조각들이 타블로의 고백처럼 보였으니까요. 또 중간 중간 넣어준 뉴욕의 사진들은 글을 방해한다거나 원고 매수를 채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타블로다운, 타블로라는 ‘캐릭터‘를 위한, 멋진 편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타블로는 작가가 아니죠. 하지만 소설집을 냈으니 작가가 된 셈이에요. 그냥 편하게 읽어보세요. 그럼 다 이해가 되어요. 글이, 사진이, 원고 매수가. 암튼 그의 책 14쪽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어요. “복도는 한때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의 천재성을 과시하는 성소 같은 그 복도를, 애정을 담아 ’미시마 명예의 전당‘이라 불렀다. 나는 늘 복도 양 벽면을 가득 메운 액사 속의 사진들과 사애들. 신문기사 스크랩들이 오로지 남의 시선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를 쓴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습니다. 『개가 남긴 한 마디』, 1958년에 터키에서 처음 출간했다는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는 책이랍니다. 제가 아지즈 네신을 기억하는 이유는 터키라는 나라의 작가라는 것과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에서 보여준 그의 놀라운 상상력 때문이랍니다. 그런 상상력이 또 한번 이 책에서 발휘됩니다. 바로 동물로 위장시켜 아지즈 네신이 풍자하는 세상의 이야기는 “허망한 권력욕과 허위의식, 외모 지상주의와 허장성세, 위정자들의 도덕적 불감증” 등을 말해주고 있죠. 그래서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세상과 사회, 인간 본성과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며, 지금 우리나라의 어수선한 상황과도 절묘하게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앗! 이 책의 14쪽에는 삽화가;;;; 까마귀가 사람의 머리 위에 똥을 싸는 장면이네요.ㅋㅋ 내용인즉, 세상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그 대표자 격인 파디샤(이슬람권 국가의 군주)를 뽑아야 하는데 그 파디샤를 까마귀가 뽑는다는 군요. 한 사람의 머리 위에 까마귀가 똥을 싸면 그 사람이 파디샤가 되는 거래요. 푸핫! 그래서 파디샤를 뽑는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자기 머리 위에 똥을 갈겨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모자를 벗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댑니다. “까마귀 형제여, 여기에, 여기에, 제발 여기에…” 어때요? 파디샤가 되고 싶지 않으세요?^^ 전 으윽~


독특한 미술 관련 책이 나왔습니다. 세계의 유명한 예술가들의 기법을 배울 수 있는 미술 기법서인데요. 어린이들에게 미술 공부의 기초를 가르쳐주는 동시에 화가들마다 가진 개성적인 미술 기법을 직접 익힐 수 있도록 만든 책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작가들의 글을 필사하는 것처럼 『한 권으로 배우는 세계의 미술가』도 대가들의 작품을 익히고 배울 수 있도록 제시해줍니다. 사물의 모양과 색깔의 특징과 변화를 인식하게 되는 4세부터 다양한 시각 예술을 접하고 직접 활동하는 12세의 어린이까지 단계별로 익힐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며 단순한 그리기가 아니라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한 흥미로운 미술 활동 경험을 통해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일깨워줍니다. 이 책의 14쪽에는 ‘로렌초 기베르티라는 1400년 경 이탈리아의 젊은 조각가의 소개와 마분지와 끈, 접착제, 알루미늄 포일로 <플로렌스 양식의 부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이 책 한 권이면 미술의 대가들을 모두 만나고 또 그들의 작품을 한번씩 만들거나 그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겠습니다.


위의 책보다 먼저 나온 책 중에 비슷한 책이 또 있네요. 같은 예술 분야지만 이건 작곡가들에 관한 책이에요.『작곡가들과 떠나는 클래식 음악 여행』, 바흐부터 모차르트, 현대 음악가 피에르 볼레즈까지, 위대한 작곡가들과 함께하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빠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이제 ‘베바‘도 끝나고 클래식에 관한 좀더 다양한 지식을 알고 싶다면 비록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같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 잡지에 연재한 내용을 독일의 음악 전문 출판사인 쇼트 뮤직 출판사에서 출간한 작품이랍니다. 책은 음악가들의 간단한 소개와 용어 설명 그리고 퍼즐과 글자 퀴즈를 담아 아이들이 즐겁게 작곡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14쪽엔 어떤 작곡가가 나올까요? 바로 ’구스타프 밀러‘입니다. ‘다이내믹‘에 관한 설명을 재미있게 해주시네요. “다이내믹이란 건, 그 곡을 얼마나 큰 소리로 아니면 작은 소리로 연주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표시지요. 연주 용어는 작품의 분위기를 더 자세히 말해 주는 말이고요. 연주 용어를 보면 작곡가가 그 음악으로 무엇을 나타내고 싶어 하는지 알아내기가 조금 쉬워진답니다, 예를 들면 내 교향곡 6번에는 이런 연주 용어들이 있어요. ’무겁게, 끌지 말고 치고 나감‘, ’고풍스럽게‘, ’서두르지 말 것‘, 같은 말들요. 이런 용어들이 연주자의 상상을 복돋워주지요. 어떤 때는 이야기를 떠올리거나 눈앞에 그림을 그려 보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사랑’에 관한 소설을 한 권 소개할까 합니다.^^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친구에게서 올해의 문학베스트에 넣을 생각이라는 사견을 들은 적이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읽어보려고 해요. 그 친구의 선택은 가끔 잘 들어맞거든요.^^ 바로 『너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입니다. 스페인 어로 쓰인 소설에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 “2007 알파과라상”을 수상했다고 하네요. 서사하라의 오랜 영토 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다고 하는데 지난달에 나온 책을 이제야 관심을 가져봅니다. 표지가 너무 덤덤했고 제목도 뭐랄까? 식상하달까? 그래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더구나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도 아닌지라…. 가끔 좋은 책들이 이런 이유로 알려지지 않을 때는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암튼 그 친구는 “쉽게 읽을 수 없지만, 읽은 뒤에 쉽게 잊을 수 없는 그런 여운이 가득하다.”라는 글을 남겼네요. 14쪽을 펼치니 “당신들, 정말 어리석군요! 정말 멍청해요!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저 인간들의 만행을 참고 견뎌야 해요. 이런 취급을 받는데도 그냥 넘긴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에요. 이건 노예만도 못한 삶이잖아요. 이건…… 이건 정말…….” 

 

인문이나 경영서도 제가 좋아라하면 좋겠네요. 아니 그보다 제가 접할 수 있는 책이 이 분야의 책들이라 저의 편애가 좀 들어갔습니다.^^ 이번 주말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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