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책을 읽기 전엔 걱정을 했었다. 김연수의 문체를 알고 있기에 분명 어려울 것이라고 아주 단정 지어 생각했으니까. 특히 잘 알지도 못하는 역사를 두고 소설을 썼다고 하니 어이쿠야! 했다. 물론 나는 그 이전에 계간지에 발표했던 『밤은 노래한다』를 읽은 적이 있다. 앞부분과 여옥이가 등장하는 부분, 마지막 부분도 기억이 난다. 그때도 나름 천천히 열심히 읽었었던 것 같다. 김연수 책은 그렇게 읽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아마 알고 있었던 듯. 

책을 읽기 전에 <민생단 사건>에 대해 먼저 알고자 한홍구 교수의 해제 부분을 먼저 읽었다. 워낙 그런 쪽엔 관심이 전무한 탓에 어렴풋하게 이해를 하였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어내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사실은 책을 펼쳐 읽는데 솔직히 두려웠다. 과연 내가 이해를 하며 읽을 수 있을까? 나처럼 대중적이고, 평범하고, 어려운 책은 싫어하는 독자가?

의외였다. 난 개인적으로 김연수의 작품 중에 이 책이 제일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산문집이나 가벼웠던 선영이를 제외하고 그동안의 작품들을 비교해보았을 때,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고나 할까? 그게 아니면 내가 드디어 김연수의 소설을 어렵다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게, 흥미롭게, 절절하게 읽어서 그렇게 느낀 것일까?

리뷰를 써볼까? 생각하다가 이내 접어버렸다. 내 성격으로 봐서 칭찬 일색의 리뷰를 쓸 게 분명하고 또 쓸데없이(이와 같은)리뷰나 써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한 번밖에 읽지 않았는데 뭐라고 아는 척하며 끄적이기가 좀 그랬다. 그래, 한 번밖에 못 읽었는데…

히라노 게이치로가 강연을 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난해하지 않고 대중적인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소설은 작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고. 헐리웃 영화의 스토리처럼 '긴장감'으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고,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고, '사건'이 일어나 결과를 궁금하게 만들고… 그도 그래서 이번에 일본에서 출간한 『별괴』(정확한 단어는 모르겠다. 제각각이다. 별궤라기도 하고 별계라기도 하고)는 이전 작품들보다 덜 난해하고 대중적이어서인지 독자들이 다들 좋아한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밤은 노래한다』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여기까지만 읽고 일 좀 보고 읽어야지 하다가도 다음 장면을 너무나 궁금하게 만드는 끝문장 때문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의 노력이 많이 엿보이고, 에곤 쉴레의 표지 그림이 이해가 되고, 벌써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되고, 한데 나는 결국 리뷰나 페이퍼나 칭찬만 가득하고…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이렇게 말해도 될까요? 지금까지 내게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이 우주는 신생 우주이고, 그토록 고요한 우주라고. 지금까지 나는 눈도, 귀도, 입도 없었던 존재라고.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맛보지 않았어요. 지금 나는 돋아난 새싹이에요. 그처럼 이 세상도 이제 막 태어난 세상이에요. 한때 나를 사로잡았던 그 소망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네요. 옷에는 얼룩만이 남아 지나간 시절들에 대해서 말해주네요. 이렇게 해서 나는 평안을 얻게 되는 건가요?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그 어떤 것에도 지지 않는 그런 평안인가요. 이제.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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