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 -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제5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이지민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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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라를 찾겠다고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제히 독립운동을 하고 있을 즈음 나라를 찾는 것보다 애인을 찾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며 엄살을 피우는 한 남자가 있다. 식민지 조선 최고의 로맨티스트, 낭만의 화신 이해명, 바로 그다.

이 재치발랄한 소설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던 근대 조선이 아니다. 30년대 조선에 '아틀란티스'라는 카페가 있을 리도 없고 '이십세기모던이미지댄스구락부'란 긴이름의 댄스장도 없었으며 스타벅스를 연상케하는 카페 '스타박스'라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럴듯한 거짓을 진실처럼 말하는 뛰어난 재주가 있다. 그 거짓을 얼마나 진짜처럼 말하느냐에 따라 소설의 재미가 판가름난다. 이렇게 실제 존재하지 않았던 장소들이 등장하며 독립운동과 여성을 향한 보수적인 그 시대의 생활상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가 코믹하고 희화적으로 나타난다.

1930년대 조선의 사랑은 어떠했는가? 조혼에 따른 불륜은 일상적인 일이었고 모던 걸의 모던한 사랑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오로지 여성들만 피해를 보던 시기였다. 만약 『모던보이』가 진지했다면 조난실이 자살하든지 이해명이 투사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랬다면 이 소설은 지루하고 우울하고 지극히 근대적인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진지하고 어둡고 불안한 이야기에서 탈피하여 근대적인 플룻에 현대의 소재를 교묘하게 집어넣어 읽는 재미를 부축였다. 그래서 재미있다.

30년대 대표적인 모던걸들은 저리가라 할만큼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는 조난실(실제였다면 각 매체에 오르내렸음이 분명한!), 총독부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일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존중하며 살고 있는 희대의 로맨티스트 이해명(그 아무리 낭만의 화신이라 할지라도 시국을 생각하면 그 역시 몰매나 맞을!) 그리고 조난실과 이해명의 사랑보다 더 사랑 같은 불륜 일본인 커플 신스케와 유키코, 조난실의 남편인 테러리스트 테러 박과 고종의 비밀정보원이었다가 불륜남녀의 현장이나 덮치는 신세가 되어 총독 암살 기회를 엿본다는 백상허까지.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캐릭터가 코믹한 이미지를 가지고 시대의 진지함보다는 시종일관 우화 같은 사건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독특한 발상과 재미를 제외하면 작가의 데뷔작이었던만큼 초반의 신선함과 재기발랄함이 전개 과정을 어렵게 지나 살짝 부족한 결말을 보여준 것이 아쉽다. 아마도 모든 작가들마냥 이지민 역시 데뷔작이어서 완성적인 결말을 내기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에서 훨씬 성숙해진 글을 경험한 나로서는 작가의 톡톡 튀는 매력적인 문체가 신선하고 좋았다는! 

이해명과 조난실의 이미지가 박해일과 김혜수로 클로즈업되어 나타나지만 김혜수는 차치하고 어쩐지 박해일의 이해명화가 그리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 제발, 시시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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