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당신의 풍경 - 20편의 글, 187의 사진으로 떠나는 우리. 도시. 풍경. 기행
강석경 외 지음, 임재천 사진, 김경범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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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시절 좋은 때가 있었다. 지금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여유가 있었고, 좀 더 젊었으며 지금보다 궁금한 게 많았던 때였다. 전국을 돌아다녀야 할 직업은 아니었지만 지방으로 다녀야 할 일이 잦았으며 그 덕분에 이런 저런 핑계 삼아 통일 전망대에서 땅끝까지 전국 유람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선 볼 것이 없다고 툴툴거렸으며 놀러 다니는 것도 지겨워 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었다. 물론 그 좋았던 시절이 지나고 나니, 다시금 그 도시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지만 이젠 붐비는 차들과 복잡해진 풍경들과 가고 싶어도 시간이 나지 않는 상황인지라 그런 핑계들을 대며 그 좋았던 시절을 추억만 하고 있다.

 

이 책을 펼치면서 문득 그때의 풍경들이 생각났다. 찬바람 부는 바닷가의 노을 지는 풍경, 대낮에도 한적한 골목길들, 그 어느 나라의 길보다도 아름다운 우리만의 풍경을 가진 길, 해맑은 모습의 사람들, 그런 내 기억 속의 풍경들에 사진작가의 시선이 머물렀고 작가들의 추억이 담긴 도시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때론 쓸쓸하게 그려졌다.

 

내게 있어 <군산>은 결혼식을 올린 친구의 시댁이 있는 도시로 기억되지만 시인 고은 선생의 향수와 우수가 서린 <군산>은 어린 그에겐 낯선 '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를 따라 갔던 군산의 모습은 삼층짜리 백화점 미나카이의 화려함을 경험한 것은 물론이고, 청요릿집에서 먹은 두 번 다시 맛보지 못할 '짜장면'과 일본어 소년 잡지 '킹구'를 처음 만나 곳이었다.

 

첫 직장이 있어 내게 도시의 즐거움을 주었던 <광화문>은 조경란 작가에겐 첫사랑과도 같은 곳이며 그녀에게 근대적 경험을 하게 한 곳이기도 하다. 또 비 내리는 도산 서원에서의 모습이 낙인 찍혀 비가 내리지 않는 안동의 모습이 낯선 내게, 시골의사 박경철은 <안동>의 진짜 모습은 길이라고 말한다. "옛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고, 경북 북부 사람들이 등짐 지고 걷던 길이며, 선비들이 책을 지고 서원으로 가던 길이고, 드넓은 풍산들에 소달구지 몰고 가던 길" 그 길이란다.

 

더불어 우주심을 제멋대로 작동시키게 만든 김연수 작가의 <삼청동>, 사방천지가 동양화 같아 주저앉고 싶은 심상대 작가의 <강릉>, <목포>는 항구지만 "상처받은 짐승이 되어 찾아가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청승과 하릴없음과 추레함의 세례를 베풀어주어 심정의 생기를 되찾게 해주었"던 평론가 서영채만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렇듯 <서울>에서 <제주>까지, 작가들의 도시에 대한 추억을 읽고 사진작가 임재천의 풍경을 보노라면 글과 사진 속에 우리네 삶이, 나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동안 왜 잊고 살았냐고 질책을 하는가하면, 따듯한 풍경으로 삶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떠날 차례이다. 당신의 마음속 도시를 향해, 당신의 풍경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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