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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여름방학 같은 때, 장마중에 비 그치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잘 분간이 안 되는 그런 날 있잖아, 누군가 놀려줄라구 얘, 너 학교 안 가니? 그러면 정신없이 책가방 들고 뛰쳐나갔다가 맥풀려서 되돌아오지. 내게는 사춘기가 그런 것 같았어. 감기약 먹고 자다가 깨다 하는 그런 나날. 막연하고 종잡을 수 없고 그러면서도 바라는 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아 언제나 충족되지 않는 미열의 나날.(…)”
사춘기 시절, 내가 가장 동경하던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거나 집안이 대단한 아이들이 아니라 유준과 같은 나름대로 지향하는 목표가 있어 자기의 길을 스스로 가는 아이들이었다. 지극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하고 말 잘 듣는 딸로 자라온 내게,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유준과 같은 아이를 볼 때마다 ‘언제 쟤처럼 한번 ‘겁’없이 굴어보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미아가 말하는 저 문장을 읽으며 ‘막연하고 종잡을 수 없고 그러면서도 바라는 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아 언제나 충족되지 않는 미열의 나날’이었던 내 사춘기의 시절이 떠올라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유독 성장소설이라는 장르에 나는 맥을 못 춘다. 세상의 모든 성장소설은 언제 읽어도 다 좋다. 이유를 생각하니 신통한 답변이 나오진 않는다. 그렇다면 처음 읽었던 성장소설은 어떤 것이었을까?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최소한『데미안』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기억에 없다. 난 황석영 선생이 말하던 ‘문소’(문학소녀)가 아니었던 게다. 그럼에도 성장소설만 보면 호기심을 내세우는 것은 또래 아이들의 고민이 대부분 비슷함에도 유독 나만은 그 시절에 이렇다 하고 내세울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곰곰 다시 생각을 해본다. 정말 사춘기의 나는 뭘 하며 지냈던가?
『개밥바라기별』을 읽은 후 세대가 다른, 요즘 세대들의 사춘기를 다룬 전아리 작가의 『직녀의 일기장』을 읽게 되었다. 조금은 의도적인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두 권의 소설을 두고 보았을 때 한국 문학의 거장이며 큰 별인 황석영 선생과 이제 갓 신인으로 등단한 전아리 작가의 말도 안 되는 문학적인 비교는 차치하더라도 내용면에서 보여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고민은 그 세대나 요즘 세대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에 방랑을 하면서 저녁 무렵 해가 지자마자 서쪽 하늘에 초승달과 더불어 나타나던 정다운 나의 별을 기억하고 있다. 벌써 경험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땅거미 질 무렵은 세상이 가장 적막하고 고즈넉해지는 순간이다. 새들도 바삐 저녁 숲을 찾아 깃으로 숨어들고 나무들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직전 짧은 정적 속에 가지를 벌리고 조용히 서 있다. 동네 아이들도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따라 밥상머리로 돌아가고 굴뚝에는 잔불 연기가 오르는데 창마다 노란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나는 낯선 마을의 고샅길 모퉁이에서 또는 들판의 두렁길 위에 서서 그맘때 나타난 그 별을 올려다보았다.“
소설 속 어느 내용보다 특히 이 부분, 선생의 작가 후기에 나오는 ‘개밥바라기별’에 관한 글을 읽을 때 가슴 한 곳이 짠해오는 것을 느꼈다. 누구나 한번쯤은 저런 상황에 마주쳐보지 않았을까? 나 역시 그런 상황이 있었고 이 글을 읽으면서 그때의 정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갔다.
영화 《화양연화》에 보면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한다. 뜻을 풀이하자면 ‘365일 꽃이 피는 시절’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삶에서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일컬을 때는 '개밥바라기별'이라고 해야겠다.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했던 사춘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름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