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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이 소설은 한마디로 독특하다. 인간과 사물과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이기에 그 만남이 이루질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이해가 된다.
아버지가 툭하면 모자가 되고 같이 살던 여자는 어느 날 오뚝이가 되는 가하면 초코맨이 되었다가 치즈맨이 된 남자의 사회를 향한 서글픈 도전기를 다룬 짧은 콩트마저도 그 독특함이 엿보인다. 어찌하여 아버지는 모자가 되어버리고 또 어찌하여 잘 다니는 직장에서 그녀는 오뚝이로 변해간 것일까. 그래서일까? 그런 사물화가 되어가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지극히 비루하고 현실적이며 고독하고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인 이 소설이 돋보이는 것은?
이제 소설가로서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황정은은 그런 환상적인 상상력을 앞세워 자칫하면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을 우울한 이야기들을 수면 밖으로 끄집어내어 특유의 명랑함과 발랄함으로 이야기 전체를 이끌고 간다.
물론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현실을 회피하는 듯하고 우리가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 현실에서 감당하기 싫은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체념들이 환상적이고 상상으로 나타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러한 시도를 한 자체로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 황정은만의 소설 세계, 그의 개성이 기대되는 또 한 명의 신진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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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유주의 『달로』가 생각났다. 뜬금없이 연관성도 없는(사실 『달로』를 다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으니 연관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책이 생각난 것은 왜 일까? 그것은 아마도 독특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유주의 소설은 사실 너무나 추상적이다. 시적이고 은유적인 것 같다. 그 책을 접한 문학을 잘 안다는 친구들(특히 시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한유주의 『달로』를 꽤 칭찬했었다. 그 바람에 덩달아 나도 뭣도 모르고 책을 사서 읽다가 큰코 다쳤지만;;; 아무튼.
그런 비슷한 상상력과 표현 기법으로 인해 황정은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유주의 글을 생각해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유주에 비하면 황정의 글은 어쨌든 이해를 조금은 하고 넘어갔으니 훨씬 독자들에게 친절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내 생각엔 말이다.
더불어 생각난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겠다. 『양을 쫓는 모험』을 읽은지 워낙 오래된 지라 내용조차 생각이 안 나는데도 그렇다.-.- 그리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