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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고리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
제롬 들라포스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야기는 오래 전 어느 가정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 속에 홀로 살아남은 소년의 중얼거림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훌쩍 시간이 흐른 2002년 노르웨이의 한 병원, 심해 탐사 도중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던 한 남자의 의식이 돌아오면서 전개된다. 사고 이전의 기억이 말소된 그에게 남은 것은 이름과 주소가 기재된 여권뿐이다. 하지만 그 주소로 찾아간 파리의 아파트는 팩스만 남은 채 텅 비어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에서 저장된 팩스 한 장에 적힌 이탈리아의 한 도서관으로 전화를 하여 그가 17세기의 고문서인 「엘리아스 필사본」의 해독을 의뢰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부터 그는 ‘나’의 실체를 찾아가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
장 크리스토퍼 그랑제에 비견되는 놀라운 작가로 등장한 들라포스는 십여 년간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제작자답게 소설 속 배경으로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심해 탐사를 위해 극지 탐사나 아프리카 분쟁 지역은 물론이고 종교 분쟁과 세균전까지 그 어느 것도 어색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은데 그건 그가 다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은 팩션으로 분류될 만큼 그 배경에 있어 충실하게 ‘사실’에 의거한다.
넋이 나간 소년의 등장이나 기억을 상실한 남자, 자신을 찾기 위해 역추적을 벌이는 장면 등은 스릴러 영화에서 몇 번이나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처음엔 살짝 지루함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들라포스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건 그를 찾아갈수록 알듯 모를듯 미궁에 빠지는 완벽한 스토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을 때 알게 되는 놀라운 진실은 스릴러 작가로서의 들라포스를 인정하게 만든다.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스토리에 빠지는 순간 50페이지로 변해버리는 마법 같은 스릴러, 후텁지근한 요즘 딱 좋은 소설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