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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미
비페이위 지음, 백지운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기다리던 비페이위의 장편소설이다. 난 이런 소설이 너무 좋다. 좀 고리타분 할 수도 있겠지만 문학성과 내용,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더라도 어느 것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다. 한국문학에선 이제 이런 소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너무 현대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쉽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나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언제는 무거운 한국문학이 싫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가벼운 것이 싫다고 하는 꼴이니;; 아무튼.
내가 태어나서 제일 부러웠던 것이 '언니'와 '여동생'이었다. 내겐 죽었다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를 보면 그들이 '찌지고 볶고' 싸워도 부러웠다. 그 부러움은 나이가 들면서 더해갔다. 여동생 못지 않게 누나를 챙겨주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지만 뭔가 터 놓을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 자매들이 있는 친구를 보면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다. 몇 살 터울 지지 않는 언니와 동생들은 서로가 경쟁 상대였고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외동딸들은 그런다. "도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
큰언니 위미는 딱 부러진 성격에 장녀의 역할을 타고 났다. 밑으로 일곱이나 되는 동생들을 거느리고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런 언니 밑에는 꼭 위슈 같은 동생이 있게 마련이다. 언니보다 예쁘지만 언니보다 덜 똑똑하고 잘난 척하지만 언니에겐 뭔지 모르는 주눅이 들어 있는. 그래서 매번 언니를 이기려고 하지만 이기지도 못한다. 또 이런 동생도 있다. 있는 지 없는지도 몰랐는데 제 할일은 조용히 다 하고 사는, 특별히 잘난 구석은 없지만 언니를 흐뭇하게 만드는 동생, 바로 위양이다.
비페이위의 장편소설『위미』는 그 바람잘날 없는 일곱딸들 중에서 세 자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부로 나뉘어 각자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결국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여자로 태어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운명과 그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싸우는 그들의 모습은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은 똑같은 삶의 모습들이다. 어쩌면 시대만 다를 뿐 내가 겪고 있는 내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내 삶이 구질구질하고 비참한 것은 아니다. 비록 힘은 들지만 희망이 있으며 그 희망을 향해 노력하고 한발자국씩 나아가는 나름대로의 행복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은 후 책을 덮고 나면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마냥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나라마다 어떠한 고비를 넘어온 작가들에게서 나오는 필력은 대단한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난 이런 생각이 든다. 작가는 뭔가 고통을 느껴봐야지만 제대로 된 글이 나오는구나! 어불성설이지만 이런 작가가 중국인이라는 게 아쉬워서 하는 소리다. 어쨌든 그의 다른 작품이 언제 번역되어 나올지 모르겠지만 몹시!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