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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래 전에 독일로 간 이모가 잠시 고향에 다니러 온 적이 있었다. 그 이모를 모시고 고향으로 내려가며 이런저런 고향의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 문득문득 내뱉는 이모의 말에 잊고 지내던 고향의 사투리와 먹거리들이 나와 참 신기했었다. 아니! 이모는 아직도 그런 걸 기억해요? 하니 그걸 우째 잊고 살겠노! 하셨다. 나 역시 고향을 떠난 지 꽤 오래되어 고향의 찐한 사투리들은 거의 다 잊어버렸고 그것들 중에서도 어릴 때 쓰던 말들은 사라진지 오래인지라 그런 단어가 있었는지조차도 가물거리는 판에 이모의 말투에서 내 어릴 때 많이 듣던 사투리들을 듣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신기하고 정겨웠던지. 한참을 그 사투리들을 써 먹으며 소녀들처럼 즐거워했었다. 이모에겐 그 오래 전에 한국을 떠날 때 기억하는 단어들이 몇 십 년이 흐르는 동안 정지되어 있다가 자연스레 나타난 것뿐이었는데 우리에겐 이미 사라져가고 있는 사투리이며 고향의 단어들이었던 거다.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을 읽으면서 나는 이모 생각이 많이 났다. 공선옥 작가만큼 ‘촌가시내’는 아니지만 그래도 촌이라고 말하는 작은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이고 공선옥 작가가 보여주는, 비록 전라도와 경상도의 사투리가 다르다 하더라도 비슷한 '추억의 음식'들과 사투리들이 무척 정겨웠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도 여름날이면 보슬보슬한 속살이 터진 하지 감자를 간식으로 하여 여름 내내 쪄 먹었으며 ‘짱깸뽀’를 하면서 “감자에 싹이 터고 잎이 나서 감자감자 숏, 감자감자 숏”하며 노래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또 엄마가 마당 빨래줄에 널어 말리던 구덕구덕한 가죽부각이 그땐 정말 별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먹지 못하게 되자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물론 가죽 나물의 향이 나는 가죽부각보다는 김부각 더 생각나지만 말이다.
또 한겨울, 전날 술을 마셔 해장을 제대로 못하신 아버지가 ‘무시’를 통째로 깎아 시원하다며 베어 드시는 걸 보며 너무 먹고 싶어 따라서 베어 물었다가 그 매운 맛에 혼이 났던 기억이며, 요즘도 집에만 가면 엄마에게 졸라 끓여 달라하는 ‘씨래기’국은 그야말로 어릴 때 가 생각나는 추억의 음식이다. 어디 그 뿐인가? 공선옥 작가가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걸 보며 헉! 나도 늙었나보다! 공감이 가네! 하는 생각을 했다나;;;
뱃속의 ‘거시’, 비오는 날이면 해주던 ‘정구지’부침, 팥죽을 만들 때마다 돌 가려내기 위해 흔들어대던 ‘얼기미’, 서울에 와서야 이런 말을 쓰면 안 된다는 걸 알만큼 너무나 자연스럽게 불러댔던 ‘가시내(경상도에선 가시나 라고 했다)’, 정말 오래된 외래어인 ‘쓰봉’, 이젠 피도 안통하고 다리도 아픈 ‘쪼글치고’(경상도 말로는 ‘쪼글씨고‘이지만;)앉기. 이와 같은 단어들은 듣기만 해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웃음부터 나온다. 특히 ‘미나리 반찬 개반찬’이란 노래를 읽을 땐 눈물이 찔끔 났다. 맞아! 이런 노래도 곧잘 불렀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고향에 내려가는 빈도가 낮아질수록 자꾸만 잊혀져가는 사투리와 음식들. 어릴 때는 정말! 지겨워서 먹기 싫었던 음식들이 이제는 공선옥 작가의 말처럼 웰빙 바람을 타고 돈 주고 사 먹어야만 먹게 되었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책을 덮으면서 혼자서 다짐을 한다. 나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울엄마표' 음식들을 반드시! 전수 받아야겠다고. 칼칼한 '무시국!'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