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의(靑衣)
비페이위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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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에 앞서 나는 감히 이 책을 강추하겠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내가 알고 있는 중국작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지만 이제까지의 중국작가들은 다 잊고 싶을 정도다. 우리나라엔 처음 소개되는 비폐이위, 그동안 왜 그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는지 아쉬울 정도다.

 

오래 전에 위화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중국소설이라곤 무협지가 모두라고 생각하던 내게 『허삼관 매혈기』는 위트와 감동을 주었다. 그때까지도 중국소설이라곤 제대로 읽은 것이 없던 터라 놀라워하며 위화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 겨우 두어 권의 소설만 나와 있었던 터라 금방 읽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 후에도 중국소설은 번역되어 나오는 책이 드물었다. 최근에야 일본소설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수의 책들이지만 쑤퉁이나 하 진, 다이 시지에, 위화 등등 중국 작가들의 책이 쏙쏙 들어오고 있다. 또 서점에 나가보니 알려지지 않은 중국 작가들의 책들이 몇 권씩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중국소설들이 가벼운 일본소설보다 더 감동적인 이유는 그 무게감과 깊이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읽은 중국소설들은 대부분 그렇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보다는 한 시대 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많고 그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분명 중국이라는 나라인데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아진다. 어쩐지 이전에 우리에게도 늘 일어나던 일들만 같다. 그래서인 것 같다. 쏙 빠져들어 읽은 이유가. 그리고 감동하는 이유가!

 

『청의』에는 세 편의 단편이 들어 있다. 경극 여배우인 샤오옌추가 <분월>이라는 경극의 주인공을 맡은 후 '항아'라는 주인공에 대한 욕망을 그려낸 표제작「청의」와 일제 점령하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몰락한 집안의 망나니 아들이 자신의 욕심을 내세워 마을 처녀들을 데리고 기생집을 운영하다가 맞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는「추수이」,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연구하며 일제강점기 때 일본 장교에게 겁탈당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낳은 외할머니의 굴욕적인 삶과 혼혈아로서 겪어야 했던 아버지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 그리고 자신에게 까지 이어오는 이념과 가치관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져준「서사」이다.

 

세 편 모두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모두가 물질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시기를 고통 속에서 겪어야 했다는 점이다. 20세기의 중국은 많은 변화 속에 성장했다. 또 많은 중국인들의 마음 깊이 일제강점기부터 문화대혁명을 겪는 동안 인간에 대한 배신과 자신을 거부하는 등 가치관과 양심을 외면해야 했고 그 결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씻을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존재하며 그 시대로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상황들을 작가인 비페이위는 심도 있고 세심한 연구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하나하나 묘사해냈다. 특히 표제작「청의」에서 보여준 주인공 샤오옌추의 파멸은 오만과 자기중심적인 욕망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어떤 누가 샤오옌추의 입장이 되었더라도 그보다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 누구든 삶을 지탱해오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샤오옌추는 그 한번의 행운을 절대로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런 샤오옌추의 감정을 비폐이위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때론 오싹하게 묘사해냈다.

 

처음 만난 작가이며 알려지지 않은 중국소설이었지만 그 가능성에 나는 놀랐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두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개인의 욕망을 이끌어내어 역사와 병합하는 놀라움은 앞으로 나올 그의 책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또 한 사람의 재능 있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독자로서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그 작가가 우리나라 작가이든 중국작가이든 간에 말이다. 다음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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