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한번도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계관이란 그런 게 아닐까?”

 

작가 김연수가 경계를 넘고 국경을 넘어 ‘여행할 권리‘를 마음대로 누리며 쓴 산문집을 펴냈다. 중국 옌뼨과 버클리, 독일의 작은 도시 밤베르크와 김샤랑의 여정을 따라 찾아간 중국의 화뻬이셩 후쟈좡 마을, 러시아 우스리스끄, 그리고 아버지의 고향 일본 나고야하고도 타지미하고도 카사하라까지 그가 오래전부터 꿈꾸어오던 국경을 넘었다. 

 

나는 김연수의 왠지 썰렁하면서도 키득거리며 웃게 되고 마는 유머를 좋아한다. 또 ‘총밍(聰明)’하고 ‘인텔리전트’하며 지적인! 그의 문학적 소양 역시 좋아하는 편이다. 이 책 『여행할 권리』에는 그런 그의 매력이 오롯이 들어있다. 훈츈 사람 이춘대씨가 ‘일없다’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된 사연을 읽으면서 웃다가 말다가 어쩔 줄 몰라하고 아버지의 리얼리티를 확인하던 부분에선 눈물이 나왔다. 또 ‘인텔리전트’하고 ‘총밍’한 율산 김연수 밤벡, 혹은 밤비가 루마니아 작가 ‘불싯‘ 쎄자르에게 거짓말한 로코코코적인 판매부수에 큭! 웃음이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김샤랑의 탈출(?)을 분석하고 1930년대 공산유격대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목을 다루는 소설을 쓰기 위해 직접 옌뼨을 가는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룽징의 윤동주가 다닌 학교와 영국더기에 관한 이야기들,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박제가 된 이상(李箱)에 대한 김연수다운 글까지 아낌없이 보여 준다.  

 

『여행할 권리』는 국경을 넘어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글 속에 존재하는 등장인물들은 그저 우리와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지구인처럼 보인다. 하루끼의 『노르웨이의 숲』에 공감하는 '푸르미'나 '려화', 우리나라의 여학생처럼 드라마에 나오지 않는 그저 평범한 미국 여자아이일 뿐이며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스무 살의 '애니', 아바……, 바람과 모래의 딸 '후사꼬할머니'의 인생 역정이나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위장결혼 전문 브로커 '신국판', 낯설면서도 익숙한 외국의 문자에 호기심을 보이며 한글로 쓴 이름을 받아 들고 한자 한자 써내려가던 ’호.세.영‘ 후 노인은 그곳으로 가지 않았으면 절대로 만나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연수 작가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 생각났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인사적인 이야기들이 이 책으로 말미암아 그들 다음으로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말하며 그 연장선에 다시 등장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허구와 사실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제목치고는 그 어떤 ’여행’에 관한 안내나 풍경을 찬미한 내용은 안 나오지만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겪게 되는 색다른 경험담이 쩐더! 재미있었다. 『청춘의 문장들』로 이미 그의 산문에 맛을 들인 나로서는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그의 이야기에 쏙!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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