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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6년 만에 내 놓은 소설집『펭귄뉴스』에서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보여주었던 김중혁 작가가 이번엔 '음악'이라는 키워드로 소설집을 냈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작품에는 피아노, 기타, 오르골, DJ, LP음반, 악기소리파일 채집 등과 같은 하나의 주제에 독특한 이야깃거리를 들려준다. 전작인『펭귄뉴스』에서도 그랬지만 그는 이 소설집으로 그만의 개성을 확실히 보여준 듯하다. 더구나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지난 작품처럼 '나와 누구'로 규정되어 있다.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공통점은 무엇인가를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동피아노」의 '나와 비토 제네베제'는 같은 회사, 같은 모델의 피아노를, 「나와 B」의 '나와 B'는 음악과 기타를, 「엇박자 D」에서 '나와 D'는 고등학교 때 합창단이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비닐광 시대」의 두 친구는 클럽 DJ가 되기 위해 LP음반에 열광한다. 그뿐인가? 한 편의 씁쓸한 코미디와도 같은 「유리 방패」에서 '나와 M'은 면접을 보기위해 단짝으로 다니며 면접을 공유하다가 전문면접관이라는 어이없는 일을 맡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음악'에 있어서는 그 공유가 좀더 확실하게 나타나면서 글마다 음악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려 준다. 피아노를 매개로 하여 만난 피아니스트와 영화 음악 감독의 묘한 교류를 다룬 「자동피아노」, 제품 사용법에 감동했다며 나타난 거래업체의 여자를 위해 연애편지 쓰듯 그녀의 오래된 오르골을 위해 매뉴얼을 작성하던 「매뉴얼 제너레이션」, 교통사고의 피해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여자 친구에게 악기를 선물하기 위해 악기점에 들리지만 우연히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나'가 600여개에 이르는 악기로 소리를 채집하고 '악기소리 주크박스'란 특이한 주크박스를 만들어 낸다는 표제작「악기들의 도서관」,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유일하게 빠져있지만 김소진의 「고아떤 뺑덕어멈」에 자신의 소설을 섞어 리믹스 소설이라는 독특한 단편을 소개한 「무방향 버스」등 선보이는 단편들이 하나같이 평범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렇듯 김중혁 작가가 그려내는 그만의 소설은 '직업'에서 '음악'이라는 평범한 소재로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이제 김중혁이라는 이름으로 확실하게 자기의 색깔을 낸 작가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소설로 나올 소재들은 써 먹을 대로 다 써먹어 더 이상 나올만한 소재가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그건 틀린 것 같다. 뻔한듯하면서도 새로움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작가들은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그건 소재를 떠나서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흔한 소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독특하고 멋진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들이 어느 시대이든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싱글녀가 판치는 소설에 싱글녀는커녕 제대로 된 여자 한 명 안 나오는 이 책이 꽤 흥미로웠다는 사실. 참하게 생긴 작가의 이미지만큼이나 참한 작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