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
이지민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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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의 이지형이 돌아왔다. 어찌 된 일인지 내 머릿속엔 이지형이 아닌 이명랑이 자리 잡고 앉아 ‘왜, 그 있잖아 이명랑 작가라고 이름을 이지민으로 바꾸긴 했는데 <모던 보이>라는 제목으로 이번에 영화도 개봉했잖아’하며 자신 있게 이지형을 이명랑이라고 떠들고 다녔더랬다. 근데 내가 올린 글을 보더니 친구가 그런다. 이명랑이 아닌데…이지형인데…그분이 이지민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온 건데…(-.-);; 아, 젠장 뭐 어쨌든, ^^

 

이지민 작가가 이번에 낸 작품집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는 표제작부터 내 취향에 쏙 들었다. 자고로 책을 읽으면서 공감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작가가 쓴 어느 문장이 내가 생각한 그 무엇과 맞아떨어지면 정신을 놓고 읽게 된다. 그래, 맞아! 이런 느낌이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내가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오래전『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를 읽은 것이 다였다. 그 이후 장편소설을 한 권 내긴 했더라만 모르고 있었다. 다만 이지형을 이명랑으로 알고 『삼오식당』도 재미있었는데…그의 첫 작품인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는 시대 배경이 일제강점기였지 그 점에 ‘혹‘하여 꽤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하며 혼자 생각했더랬다;;; 그래서 딴엔 아주 잘 알고 있는 작가라고 이번에 나온 작품을 읽으면서도 혼자 즐거워했다지. 어? 재밌잖아! 역시! 해가며;;;

 

아무튼, 쓸데없는 말은 이제 그만하고;;

 

모두 9편의 단편을 실은 이 작품집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우울하다. 하지만 여느 소설들처럼 그 우울함으로 인해 그들이 비루한 삶을 살게 되거나 현실을 도피하지는 않는다. 현실에 대한 자조 섞인 비판을 통해 나름대로 삶의 타당성을 찾고 작은 반전들로 인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울하게 글을 읽다가 종내는 등장인물들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므로 작품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표제작인「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는 카프카만큼이나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내’가 혼자 가지고 노는 마리오네트 취급을 당했음을 깨달으면서도 그 남자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한다. 결국 스스로 마리오네트가 되었음을 알면서 아닌 척하지만 그런 반복을 통해 나름 이별이지만 슬퍼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편의 코미디 같은「오늘의 커피」는 어떤가? 똑똑한 몇 명의 회사 직원들이 독립하려는 걸 눈치 채고 그 팀에 끼어 호기롭게 사표까지 던진 인옥. 하지만 그들로부터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한 후 어쨌든 먹고 살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꿈에 그리던 카페를 차리게 된다. 드디어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찰나 모든 일이 자신이 꿈꿔왔던 일과는 다르게 진행되어가는 상황에 좌절하지만 포기하진 않는다. 하지만 결국 ‘세상에는 자신을 포기해야만 의미 있는 일도 존재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외 엄마의 돈을 갈취(?)하기 위한 아들의 어이없는 행각을 다룬 「타파웨어에 대한 명상」, 「허니문」의 불륜 커플이나 「불륜 세일즈」의 불륜 행각은 있는 자들의 소유할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소비 메커니즘을 보여주며, 임신한 아내가 친정으로 간 사이 혼자 남은 남편이 그제야 아내의 외로움을 깨닫게 된다는 「키티 부인」등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관계는 없다. 그들은 마치 다함께 짠 것처럼 불행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다. 지치고 힘든 삶이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으니 그것으로 인해 비관적이 되거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유도한다.  

 

그러고보면 해설자인 양윤의 평론가의 말처럼 이지민은 어쩌면 ‘변신’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 인물의 변신, 그들 삶의 변신, 그리고 작가의 변신. 그런 변신을 통해 현실의 삶을 돌아보며 재빠르게 또다른 삶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인생들, 독자로서는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늘 똑같은 것은 역시 지루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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