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내가 딴생각에 빠져 담뱃재 터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있을 때 살며시 내 손에서 담배를 가져가 재떨이에 가볍게 툭툭 턴 후 다시 나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주던 세심한 그의 손, 사람 꽉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땀에 젖어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책장 넘기듯 손톱 끝으로 살짝 떼어 내주던 착한 그의 손, 후진할 때 능숙하게 핸들을 돌리며 남은 한 손으로 내 어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섹시한 그의 손, 어지간히 맛없던 음식점에서 식어가는 내 하얀 밥 위에 냇가에 나뭇잎을 띄우듯 껫잎 하나를 살며시 얹어주던 다정한 그의 손, 도넛을 먹다 슈가파우더가 묻은 내 입가를 첫눈을 맛볼 때처럼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 입으로 가져가던 귀여운 그의 손……이제야 알겠다. 그가 혼자만 보며 갖고 놀았던 마리오네트는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그의 장인에 가까운 손짓 아래 나는 앉았다 일어났다 웃었다 울었다 하며 살아 있는 척을 했다.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인형은 자신과 주인을 연결해주는 몇 개의 줄이 얼마나 가는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p10~11)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 이 단편을 읽으며 심히 공감하였다.^^; 한 남자의 매력을 이야기 하는데 손 하나만으로 가능한 여자가 나 말고도 또 있다니!!(비록 소설 속이지만도) 더구나 이 소설 속 '나'의 하는 짓이 어쩌면 그리도 나와 같은지;;; 공감 공감 대공감!-.-;

한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무조건 들이밀고 보는 내 성격은 상대방이 싫다는 표정을 짓기 전엔 절대로 포기를 안 한다. 그래서 항상 상처를 받는 편이지만 내가 좋아했으므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다 했으므로 후회는 없다 와 같은 얼토당토않은 공식을 내세우면서 자기합리화 하고 또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뻔히 내다보이는 미래를 어찌 당사자가 모를 것인가? 그럼에도 상대방을 향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자기만족감이 아닐까 싶다. 소설 속 '나'가 그토록 미련을 가지다가 어느 순간 도에 도달한 사람처럼 그를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사랑하므로 떠나보내겠다 라기보다는 그에게 내가 할 만큼 다해줬기에 이젠 해줄것이 없으므로 편하게 너를 떠나보내겠다는 0형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A형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물론 나와 같은 A형이 몇 안 되더라마는;;)

서울에서 제일 구차한 여자가 되어
"나 지금 만족해요. 더이상 바라지 않아요. 민우씨한테는 하루 중 가장 의미 없다 생각되는 시간도 나한테는 귀하니까요. 언제든 허전하고 외로운 날이면 나를 불러요.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 테니. 잘 자요" 그리고 달아오른 뒤통수를 까닥이며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p22)

'나'가 그 말을 하고 돌아서서 걷기 시작하며 혹시나 그가 부르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들리는 소리라곤 '쾅'하고 대문 닫는 소리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는데… 그 마음이 어쩜 구구절절이 이해가 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남자를 집에까지 바래다 준 적도 없고, 위와 같은 상황을 겪은 적은 한번도 없음에도 '나'의 그 구차함이 제대로 전해오다니!!

마지막에 남자가 마지막으로 자신이 '나'를 집까지 바래다 준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때 '나'는 싫다고 이야기 한다. 그 이유라는 것이 "나만의 기쁨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이 대목이야말로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이며 진정 '나'다운 행동이었다.

"나의 에스코트가 필요없어진 그의 삶에 섭섭함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나의 정성과 노력을 무시하는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이 있듯 그런 남자도 있기 마련이므로. 어쨌거나 세상에는 또하나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 만들어졌다. 그것을 흔히 이별이라고 말하지만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멋진 밤을 보냈어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우리의 삶에서 영원히 멈출 수 없듯, 우리의 사랑과 우정 역시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p35~36)

어제 친구를 만나 이 소설 이야기 해주며 내 이야기를 살짝하였더니 그 친구가 그러더군. 정말 이해하기 힘든 A형이라고.(-.-) 사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긴 하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이젠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 열정은 남아 있다. 켁!
아, 갑자기 나의 풍부한(?) 남친들을 두고 "풍요 속에 빈곤"이라 말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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