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첫사랑
장마르크 파리시 지음, 강현주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그 사랑의 결말은 고통이다. 난 누군가 사랑을 하면 그 사랑 때문에 한번쯤 아파해보기를 바란다. 그만큼 성숙해진다는 진부한 말을 해대면서.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랑에 아파하기를 거부한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랑에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지나간 사랑을 기억한다. 그 사랑을 우린 첫사랑이라 부른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그 사랑은, 어느 날 문득 노래의 가사들을 머릿속에 들어오게 만든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 전엔 현실 속에서 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 노래들이었다. 그리고 매일 그 한 사람을 기다리고 만나고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람과 함께일 때면 절대로 지루함을 모른다. 동이 틀 때까지 인생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 사람과 나누는 그 모든 것에 의미가 붙기 시작한다.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녀가 원한다면 절벽에 핀 꽃이라도 따 줄 수가 있으며 그가 원한다면 내 모든 친구들을 버릴 수 있다. 그게 사랑이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그런 사랑을 해보지 못한 한 남자, 프랑수아가 있다. 700곡이나 되는 노랫말을 썼으며 그 중에 사분의 일이 사랑에 관한 노랫말이었음에도 그 가사들은 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포르노적인 시대에 만난 열여덟이나 어린 가일을 프랑수아는 이미 지나버린 20세기 방식대로 사랑했다. 만나면서 그의 모든 것은 변했다. 사랑은, 그게 비록 첫사랑일지언정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더구나 늦은 나이에 찾아온 첫사랑은 지독하다. 그동안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 모든 사랑은 그 사랑 앞에서 이미 사랑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니, 이유라 할 수도 없는 이유로 인해 그 여자가 멀어지기 시작하고 어느 날 이별의 통보를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절망에 빠져버린다.

“만일 사랑이 고독으로 이어지는 가장 짧은 길이라면 거짓말은 어리석음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사랑 안에서 고독하고 거짓말 때문에 소외된 채 나는 완전히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사랑 속에서 우리가 둘이 아니라면 우리는 온전히 하나일 수도 없다.” (p144)

가일은 말한다. “왜냐하면 나를 너무 아프게 하기 때문이야.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나는 당신의 사랑에 아무런 답도 해줄 수가 없어. 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과연 이런 말이 헤어지는 이유가 되는 걸까? 무릎 꿇고 매달리는 프랑수아에게 가일은 더욱 가혹하게 말한다. “제발, 일어나. 당신이 이렇게 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 당신은 내가 만났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어.” 실연을 당하는 판에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인가? 가일은 진정 이런 말이 프랑수아를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을까?

첫사랑에 실연당한 사람들은 똑같다. 일을 팽개치고 자신을 버린다. 그리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녀를 되돌아오게 만들려고 비참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일 대로 보인다. 하지만 가일은 사라졌다. 어느 곳에서도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거리로부터 아무런 삶의 의미도 욕망도 일시적 약속도 찾을 수 없었다. 오래 전에 거리는 나의 침대였고, 파리의 모든 모퉁이로 이어지는 산문시였다. 이제 거리는 나의 타락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는 긴 터널일 뿐이었다. 도시는 마치 황폐해진 내 영혼을 보여주는 듯했다.” (p154)

가일과 함께 했던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는 이제 그에게 아픈 추억만 보여줄 뿐이다.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던 레스토랑도 함께 산책을 하며 거닐던 공원도 그녀만을 위한 휴대폰 벨소리마저도.

"절대로 고통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사람에게 사랑은 고통이라는 아름다운 세례를 베풀어주었다.”

2007년 프랑스 ‘로제 니미에 문학상’을 받은 이 책 『마지막 첫사랑』은 그렇게 늦은 나이에 찾아온 한 남자의 첫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장 마르크 파리시는 프랑수아를 통해서 말한다. 누구나 첫사랑을 가지고 있으며 그 첫사랑의 유적을 떠나기란 불가능하다고. 가일이 자신의 삶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지만 남자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남자는 전쟁 혹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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