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클레르 카스티용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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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르 카스티용을 다시 만났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악한 요소를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인 『왜 날 사랑하지 않아』와 엄마와 딸, 여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정말! 잔혹하게 다룬 『로즈 베이비』를 읽은 후 세 번째 만남이다. 기다렸다. 내가 프랑스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원서를 사서라도 읽어보고 싶었지만, 이럴 땐 참 속상하다^^;;;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선수인 ‘악의 꽃’ 클레르 카스티용, 그런 소설이 뭐 그리 좋다고 그렇게 목을 매느냐한다면 할 말이 그다지 없지만 그 불편함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클레르 카스티용에게 있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진실’이 보인다. 소설이 소설다워야 하지만 그 소설들 속에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와 치를 떨게 하고 두려움마저 들게 하므로 그의 소설을 놓칠 수가 없다.

그의 소설엔 공통점으로 들어가 있는 주제가 ‘사랑’이다. 지독하고 잔혹하고 ‘악취’마저 풍기는 그런 사랑. 그러니 사랑은 달콤하고, 사랑은 아름다우며 사랑은 진실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을 드는 순간 그 사랑에 혐오감을 느낄 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부부다. 모두 스물세 편의 짧은 단편 속에 카스키용이 말하는 사랑은 지독하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미쳐가는 아내를 그린 표제작「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를 필두로 결혼식 날 요리사와 바람이 난 신부의 수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그라탱」, 괴팍하고 폭력적인 남편에게 쫓겨 욕실에 갇혀 혼자 중얼거리면서 꿈꾸는 남편에 대한 복수를 그린 「쥐약」, 설마? 설마? 하며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허걱! 놀라게 만드는 「천장에 매달린 거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가족의 견고한 결속을 확인하기 위해 엄마와 아이들이 아빠랑 나누는 대화를 그린「사회 기본구성단위로서의 가족」의 어이없음과 마지막 「우리의 배은망덕한 아이들」의 부부가 보여주는 오싹한 대화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거부’하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양 하나같이 잔혹하다. 하지만 그 단편들을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것은 책 속의 세상이 어쩐지 지금의 현실 세상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당신 없으면 못살 것 같아 결혼을 하고도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사랑에 대한 치매라도 걸린 마냥 잊어버리고 세상의 원수가 되어 헤어지는 부부와 제 자식을 딸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보는 미친놈들이 이 세상 어느 구석에서도 존재하며 딴엔 사랑으로 키운다고 자식들을 낳아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아이들을 방치하는 부모들. 이 역시 소설이 아니고 지금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므로.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그 누구에게나 그 나름대로의 사랑에 대한 방식이 있으며 내가 그 사랑에 물어뜯기든 그 사랑을 죽여 버리든 그건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한 공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옹색하고 비루하며 메마르고 인정머리 없는, 질투와 뒤틀리고 불행한 마음’을 가진 존재들도 사랑을 할 권리는 있는 것이다. 그 사랑에 ‘악취’가 날지언정 그들에겐 그마저도 향기로울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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