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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참 묘한 소설이었다. 문체도 그렇고, 끊임없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내용도 그렇고, 읽으면서도 정신이 없었다. 문장부호 하나 없이 내용인 듯 설명인 듯 헷갈리는 문체에서 몇 번이나 앞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하게 만들더니 어느새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상한 묘미를 맛보게 하는 독특한 소설.
특히 보안관 벨의 넋두리 중 한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30년대에 전국의 학교에 보내는 설문조사에서 학교 교육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선생님이 수업 중에 떠들거나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일, 껌을 씹거나 숙제를 베끼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겨우 40년이 지난 시점에 그 질문을 다시 했더니 돌아온 답은 강간, 방화, 마약, 자살과 같은 끔찍한 답변이었단다. 비록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허구라고 단정하기엔 너무나 맞는 말이기에 벨의 걱정처럼 앞으로 40년 후엔 과연 얼마나 괴상한 것이 등장하려는지 나도 걱정이 된다.
이 책은 나름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다. 살인이 벌어지고 누군가 그 처참한 장면을 목격하고 그들의 돈을 훔쳐 달아난다. 그리고 그 돈을 되찾기 위해 그 뒤를 쫓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살인이 저질러진다. 이 살인범의 역할은 그야말로 극악한 자의 표본이다.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무조건 죽인다. 아무 죄책감도 없으며 동전의 앞과 뒷면으로 상대방의 생과 사를 결정하면서 피해자에게 선택권을 주었다고 합리화한다. 이런 어이없는 살인범의 행태가 오싹하리만큼 무섭고 두려움을 가져온다. 또한 소설 전반에 흐르는 야릇하면서 은근한 사건 전개들은 언제 잡힐지 모르면서 도망치는 모스로 하여금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살인범이 누구이며 누가 쫓기는 자이고 쫓는 자인지를 미리 밝히면서 시작하지만 초반엔 등장인물과 내용과 대화와 설명이 뒤죽박죽 정신없이 뒤섞이므로 집중을 해야만 할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이 책은 결코 ‘친절하게’ 문장을 이끌어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속에 곁들인 글을 읽으면서 그 장면을 상상하다보면 음울하고, 묵시적인 왠지 독특하면서도 글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경들이 떠오른다.(아마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말에 이런 상상력이 더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플롯의 스릴러, 살인을 저지르면서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현대의 문명인들과 이제는 일상처럼 느껴지는 뉴스 속의 수많은 끔찍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면서 또한 책을 읽는 재미까지 선사한 문학작품. 영화로도 볼 생각이다. 어쩐지 영화로 만들어서 실패한 책들하고는 다른, 꽤 괜찮은 영화일 듯하다. 끔찍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