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번 '필'이 꽂힌 작가의 책이라면 내용은 상관없이 무조건 읽고 본다. 이언 매큐언 역시 그런 작가 중에 한 명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을 때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오래도 끌었다. 어언 몇 달만에 읽어낸 작품인가? 장하다! -.-

얼마 전 히라노 게이치로는 『책을 읽는 방법』에서 '슬로 리딩'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도 '슬로 리딩'을 한 것인가? 좀 헷갈리지만 뭐, 몇 달을 끌었으니 그렇다고 봐야 하나? 아무튼.

이언 매큐언은 제목처럼 토요일, 단 하루 만에 일어난 이야기로 책 한 권을 썼다. 2003년 2월 15일은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벌어진 날이다.  그 토요일에 신경외과 의사인 헨리 퍼론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고 서로 상반된 삶을 살아온 두 남자가 우연히 만나면서 예기치 못한 폭력이 끼어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론. 굉장히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에서 이언 매큐언이 보여주는 것은 테러와 알카에다, 9·11과 전쟁 등 비일상적인 폭력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어찌나 자연스럽게 끼어드는지 헨리 퍼론의 생각을 꼭 내가 하는 것만 같았다.

지루한듯 이어지는 헨리 퍼론의 생각들이 그렇게 느껴진 것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이다. 사람이란 그런 것 같다.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깨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비틀거리는 한 사람이 보인다. 그러면 혼자 마음 속으로 생각을 할 것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틀거리는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가? 집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지 않으려나? 무슨 연유로 이 새벽까지 저토록 취한 것일까? 혹시 어디가 아픈 사람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나도 오래 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다 딴 생각이 들면 또 다른 잡념과 기억과 추억과 고민과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혼자만의 사색(?)에 잠긴다. 그래서인 것 같다. 내가 헨리 퍼론이었다고 해도 그렇지 않았을까?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혼자서 그 새벽에 일어나면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한번쯤은 하루동안의 생각과 일어난 일들을 적어보면 책 한 권 나올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시인인 딸과 퍼론의 대 이라크전에 관한 대화, 할아버지와 손녀의 시에 대한 논쟁에서 보여지듯 세대간의 생각차이로 오는 그 화두들이 어디서 많이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딴엔 한 문장, 한 문장을 아주 천천히 이해를 하면서 읽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실 꽤 지루했던 것은 사실이다. 나름 사건이 벌어진 두 번의 장면에서 살짝 긴장감을 느끼긴 했지만 어쩐지 이언 매큐언답지 않게 너무 무게를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당분간 이언 매큐언을 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책이 나오면 또 미친듯이 읽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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