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끝별의 밥시 이야기
정끝별 지음, 금동원 그림 / 마음의숲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 주 읽은 안도현 시인의 시집 속 음식들이 소화도 되기 전에 또다른 시를 읽었다. 역시 음식과 관련된 시집이다. 이 시집은 아예 시인들의 시 중에서 음식과 관련된 시들을 발췌했다. 그리고 정끝별 시인이 코멘트를 달았다. 잘 차려진 밥상에 입만 가져가 배부르게 잘 얻어 먹은 셈이다.^^

'밥'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민보기' 시인의 잘 알려진 시「긍정적인 밥」을 비롯하여(그의 오늘의 예술가 상과 관련한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시가 안 나올 수 없겠다 싶다) 많은 시인들의 '밥' 시들이 나온다.

박형준 시인의 「별식」은 동구의 밭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막내를 위해 만들어 주던 밀가루 떡이었으며, 문태준 시인은 「노모」가 오물오물 밥을 씹는 모습에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했다. 문인수 시인은 여름날 저녁 어머니가 만들어준 「칼국수」를 그리워했고, 조운 시인의 「상치쌈」엔 침이 돌았다.

시인들의 시상(想)엔 고향이, 엄마가, 음식이 들어 있다. 마치 그게 없으면 시가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숨결
    -이희중

오래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가 아는 으뜸 된장 맛도 지상에서 사라졌다

한 사람이 죽는 일은 꽃이 지듯 숨이 지듯 뚝 지는 것만 아니고
목구멍을 드나들던 숨, 곧 목숨만 끊어지는 것만 아니고
그의 숨결이 닿는 모든 것이, 그의 손때가 묻는 모든 것이,
그의 평생 닦고 쌓아온 지혜와 수완이
적막해진다는 것, 정처 없어진다는 것
그대가 죽으면,
그대의 둥글고 매끄러운 글씨가 사라지고
그대가 끓이던 라면 면발의 불가사의한 쫄깃함도 사라지고
그대가 던지던 농의 절대적 썰렁함도 사라지고
그대가 은밀히 자랑하던 방중술도 사라지고
그리고 그대가 아끼던 재떨이나 만년필은 유품이 되고
또 돌보던 화초나 애완동물은 여생이 고달파질 터이니

장차 어머니 돌아가시면
내가 아는 으뜸 김치 맛도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아는 으뜸 '육개장'도 어머니 돌아가시면 사라지겠다. 그러면 나도 그 '육개장' 덕분에, 어머니 덕분에 '밥'시 한 편 짓는 것쯤이야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기실 시인이라면 다 그렇지 않겠는가, 시인에게 언어는 먹거리의 재료와 같다. 시인에게 잘 먹는다는 것은 언어를 재료로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좋은 시를 쓴다는 것과 같다. 그런 좋은 시는 시인에게 밥을 먹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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