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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버린 여인들 - 實錄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
손경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작년에 조선의 연애사건을 다룬 책을 읽었다. 유교사상이 뿌리박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연애사건을 다룬 책이라 꽤 흥미로웠다. 남녀가 유별한 시대인데 '연애'라니! 하긴 남녀가 존재하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든 '연애'라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인데도 그럼에도 어떻게 연애를 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동하였으니;; 그러나 역시 유교 사회였다. '연애'의 피해자는 잘 되어도 잘못 되어도 늘 여자였다. 물론 현재라고 해서 그다지 나아진 것은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연애사건, 즉 서로 원해서 한 사랑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억압을 받았는데 하물며 그 외의 일들에선 또 얼마나 수모를 당했을 것인가? 이 책 『조선이 버린 여인들』을 보면 나온다. "국가와 남자는 물론 같은 여자들에게조차 상처를 받아야 했던 33명의 조선 하층민 여인들의 삶" 읽노라니 어휴! 하는 안타까운 한숨과 휴! 하는 다행스럽다는 한숨이 교차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인들은 세종에서 성종 대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 속에 등장한다. 그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밑바닥을 살다 간 노비나 기녀이거나 첩이었다.
상중에 아이를 낳았다고 여섯 아이와 헤어져 관기로 전락해 잡일을 하게 된 옥루아, 물론 본처를 소박한 죄가 있었다고는 하나 남편은 뭐란 말인가? 남자는 기껏 장 90대를 맞은 1년 뒤 고신을 돌려받고 관직에 복귀하지만 옥루아는 첩이었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헤어져 장 80대에 노역을 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이것만 봐도 기녀들의 인생은 그야말로 고단하다. 남자들의 노리개 신세를 면하기 위해 첩으로 들어앉기만을 바라지만 첩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그녀들의 삶이 화창할 일이 없다. 기생은 면했으되 첩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다가 조금의 실수만 눈에 띄어도 가차 없이 다시 내몰리는 팔자였다.
여종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여종이 자신의 소유물이나 되는 것처럼 탐하던 양반네들의 행실은 언질을 준 여종이 꿈에 다른 남자를 보았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살해한다. 하지만 살해를 명한 남자는 왕족이라는 이유로 죄를 피했고 오로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한 종들만 법의 적용을 받았다.
이렇듯 그 어떤 사건이 터지더라도, 그 어떤 이유가 되었더라도 대부분의 피해는 여인들이었으며 힘없는 하층민들이었다.
이러한 여성 박해(?)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만 하더라도 남녀의 재산 분배가 균등했으며 제사도 돌아가면서 모셨고, 여성들의 이혼과 재혼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하지만 조선시대 들어서면서 "불교는 유교로 대체되었고, 느슨한 신분관계는 엄격한 상하관계로 다시 조여졌다. 남편이 처가살이하던 관행은 며느리가 시댁살이하는 전통으로 역전되었다. 조선은 고려의 모든 유산에 불량품의 딱지를 붙이며 사회 정화의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서도 막 나가는 여인들이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 배다른 딸과 혼인을 시키려 했던 여인, 남편이 죽자 여종이었다가 첩이 된 여인 핍박하다 죽인 본처, 신분상승의 욕구를 억누르지 못하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아들을 시켜 계집종을 살해한 첩도 있었다.
책을 덮으면서 같은 여성으로서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사건들을 들추어내자면 조선시대 못지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과거든 현재든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끝없이 여권신장 하여 살기 좋아졌다고 말을 해도 그건 늘 남자들의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족 한마디 : 이 책의 장점은 자칫 야사로 흐를 뻔한 이야기들 사이에 '깊이 읽기'라는 부분을 넣어 조선시대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었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건의 개요와 진행상황, 조정과 왕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판결까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 부분에서 조선시대 사대부의 유교적 사상에 물든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편견을 바라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