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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와 딸,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관계다. 제일 많이 이해하면서도 결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이, 이 소설 『엄마의 집』은 그런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그러나 기존의 엄마와 딸처럼 억지스런 해후도 화해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같은 여자로서 동등한 인격체로서 바라보는, 그게 낯설지 않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다.
엄마, 386세대라 일컫는 80년대에 대학을 나와 세속적인 모든 것을 경멸하고 평생 가난하고 자유롭게 살자던 남편을 만나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운동권이 변절자가 되어 제 앞길 막기에 급급할 때도 혼자서 청춘에 변절하지 않고 바닥을 헤매던 남편을 결국은 떠나야만 했던 엄마는 전형적인 한국여자가 되기보다는 이혼한 것에 기죽지 않고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직업을 갖고, 애인을 두고, 나름대로 지각이 있는 여자다. 그리고 딸의 모든 아픔은 오로지 자기 때문이라고 믿는 '엄마'다.
딸, 어려서 부모가 이혼하자 엄마와 살기 전까지는 외할머니와 살아야했고 이제 엄마와 같이 살 수 있게 되지만 학교 기숙사로 떠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세상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고, 철저한 몰이해 속에서 문득문득 상실의 공포를 느끼며 곧잘 울음을 터뜨렸다. 스물한 살인 지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팔이 떨어질 만큼 일을 하면서도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88만원 세대, 비운의 청춘이자 남루한 청춘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씩씩한 '딸'이다.
이야기는 딸인 호은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재혼한 아빠가 어느 날 나타나서 재혼해서 생긴 딸을 두고 사라진다. 커서 되고 싶은 것은 없지만 세계의 특선 요리를 다 찾아다니면서 먹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고, 원숭이와 개와 당나귀와 공작새와 함께 대단한 공동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열다섯 살의 승지. 돌연한 승지의 출현으로 엄마는 어이없어 한다. 그리고 그 딸을 데리고 아빠를 찾아 나서지만 찾지 못하고 전 남편의 딸과 묘한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언뜻 호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우울해지기도 한다. 엄마를 여의고 아빠의 전처의 집에서 살아야 하는 승지나 이혼한 부모와 그 누구하고도 살지 못하고 외할머니와 살아야 했던 결손가정의 소녀 호은, 그러나 호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여성이다. 엄마가 자신의 집을 가지고 나서야 자신을 불렀을 때, '엄마의 집'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며 살았는지 이해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빠가 돌아와 호은이 간직하던 진실을 비로서야 알게 되었을 때, 호은은 가지고 있던 우울한 과거를 떨치게 된다. 그리고 이제 과거들에 얽매이지 않고 부모의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며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엄마와 아빠와 아무리 무수히 헤어져도, 그건 삶일 뿐 이별이 아니라는 것을." p280
아무래도 전경린은 변한 것 같다. 기존의 소설들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다. 일탈과 자기 정체성에 방황하는 여자들이 아니다. 남편이 없어도, 아빠가 없어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그 변화가 아주 반갑다. 호은이 참 잘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