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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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지만 공선옥의 소설은 처음이다. 처음일 수도 있는 책들이 많은데도 내가 부끄럽다고 한 이유는 이렇게 명랑한 소설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명랑하다고? 공선옥 소설이? 의문 부호 달며 따질 사람 많겠지만 나는 그렇다. 내겐 소박하면서도 엉뚱한 상상력들이, 또 한편으로 가슴 뭉클하게 하는 장면들이 눈물 나게 즐겁다.

『명랑한 밤길』에 나오는 대부분의 ‘나’는 혼자이거나, 사별을 했거나, 남편이 있어도 애틋한 마음이 사라진지 오래된 여자들이다. 달콤한 사랑은 모두 과거 이야기이자 상상 속의 상황이다. 현재는 현실의 빈곤함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도 처연함보다는 피식! 웃음이 난다.

아들과 단둘이 사는 동료 교사의 집을 몰래 찾아 가 우렁각시 짓을 하려다 말고 나오는가 하면(꽃 진 자리), 이십년 전, 스무 살 시절 동네 강가에서 딱 한번 만났던 남자의 체취를 기억하고선 그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남자에게 왠지 기대고 싶은 기막히고 웃기는 감정 때문에 친구 남편 문상을 가서 울음을 터뜨린다(영희는 언제 우는가). 또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도시에서 온 남자의 마음이 변한 것을 보고 마음의 슬픔을, 분노를, 낯선 감정을 겨우 통화중 대기 장치 따위의 엉뚱한 말로 내던지고선 무안해하다가 남자의 조소에 용기를 내어 할 말 다 했을 때, 보인 남자의 반응은 얼마나 웃겼는지(명랑한 밤길), 중년이 된 대학 때의 동지(?)를 만나 연애의 감정이 틀림없다고 짐작하며 그녀가 하는 상상은 또 얼마나 어이없음에 웃음이 나는지(폐경 전야) 구차한 인생들이 작가의 넉살 덕에 허허거릴 수 있다는 것에서 공선옥 작가의 필력이 느껴진다.

그가 말하는 삶은 꽤나 현실적이다. 그건 그가 ‘변방’에서 경험한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직접 지켜본 결과일 것이다. 미화하지 않는 인간 그대로의 삶,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그들의 삶을 공선옥 작가는 바라보고 보듬는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한번쯤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었던 이야기이고,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싶어 안심을 하게 만든다. ‘낯익고 낯익어서 슬픈 풍경’들이 그에게로 가서 ‘낯익고 낯익어서 즐거운 풍경’이 될 수도 있음이 어쩌면 다행이다 싶다.

그러고 보니 나의 독서 취향도 그동안 많이 변한 것 같다. 너무나 현실적인 것들이 싫어서 가급적이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에 호감을 가졌었는데 이젠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에 같이 동감하고, 낄낄거리며 웃다가 또 한편으론 마음 저 구석에서 밀려오는 싸한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내 스스로 왜 이리 대견한지;;; 어른이 되었나보다.^^;

누군가 공선옥을 두고 궁상스럽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공선옥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도 나 역시 그 궁상스러움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궁상스런 자에게는 궁상스러움만 비칠지도 모른다. 이젠 그 궁상스러움이 명랑하게 보이니 그렇다면 내가 이젠 명랑해졌다는 결론인가? 뭐 어쨌든, 그를 제대로 알게 된 명랑한 이 밤, 윤도현의 노래가 절로 나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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