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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웨어 ㅣ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닐 게이먼 원작의 <스타더스트>를 본 적이 있다. 원작은 미처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느낌이 온다. 현실의 세계와는 다른 어느 곳, 뭔가를 찾아나서는 사람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을 사고파는 마켓,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비슷하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라는 소설이 있다. 그 책에도 지하세계가 나온다. 그러나 그 세계는 비교적 현실적이다. 읽어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이 문득 생각난 것은 아마도 지하라는 공통된 장소 때문이고, 그곳으로 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지상에서의 힘든 일을 당하고 더는 그곳에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피해왔다는 설정 때문일 것이다. 또 어제 읽은 기욤 뮈소의 『사랑하기 때문에』도 보면 지하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현실에서의 도피를 꿈꾸기 때문에 지하로 찾아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네버웨어』는 우연히 지하세계로 빠져들었다는 것이 위의 두 책과 다르지만 지상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같은 점이 있다.
여기 리처드라고 불리는 평범한 남자가 있다. 그에겐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고, 그의 사회생활에서도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어느 날 길에 쓰러진 소녀를 구하면서 그의 생활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부터 갑자기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이 된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미 영화에서 보아왔듯이 우리의 미래엔(어쩌면 지금도 실현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과연 그런 일을 당한다면 그 공포감이 얼마나 대단할까? 또 그런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나 될까? 차라리 판타지 소설인 것이 다행이다.^^;
뉴욕의 지하 하수도엔 흰색 악어 왕이 산다. 베를린의 지하도시엔 공포의 무서운 곰이 살고 있고, 캘커타의 지하엔 검은 호랑이가 살고 있다. 그리고 리처드가 살고 있는 이 도시 런던의 지하에는 멧돼지를 닮은 괴수가 살고 있다. 런던은 원래부터 지상과 지하의 두 도시로 나뉘어져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렇다. 그곳에서 지하세계를 통합하려다 실패한 포르티코 경의 가족이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하고 딸인 도어(Door)만이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된다. 딸은 복수의 길을 나선다. 천사 이슬링턴이 가족을 살해한 배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찾기 위한 험난한 길이다. 이런 경우, 항상 등장하여 방해하는 악당들이 있겠지, 바로 크루프가 벤더마가 그들이다. 그들, 크루프와 벤더마의 악행은 이미 오래 전 기원전부터 시작한다. 트로이를 불태우고, 흑사병을 일으켰으며, 십여 명의 황제와 오십 명의 영웅을 죽인 악당 중의 악당이다. 그렇다면, 도어는 그들을 물리치고 천사 이슬링턴을 만날 수 있을까?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판타지 소설엔 음모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천사를 찾아가는 길이 쉽지도 않다. 더군다나 언제 어느 곳에서 그 지독한 악당을 만날지도 걱정이다.
어쩔 수 없이 지하세계로 내려간 리처드가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존재가 있었던 지상으로 다시 나가기 위해 도어 일행과 함께 천사를 찾아다니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판타지 소설의 매력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말 환상적인 것들을 경험하게 되니 말이다. 쥐나라 말을 하는 사람과 쥐나라 대왕,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카라바스 후작, 온기를 빼앗아 자신의 생명력을 얻는 여인 라미아가 있는가 하면, 지하세계 최고의 경호원인 헌트의 활약과 수도사들과의 게임도 빠질 수 없다.
마침내, 천사 이슬링턴을 찾은 도어와 또 마침내 지상으로 복귀한 리처드의 최후의 선택은 이미 예견했지만도 놀랍다. 하지만 아이가 힘든 모험과도 같은 여행을 하고 나면 쑥쑥 자라듯이 어른인 리처드 역시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어른이 되었던 것.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지극히 평범한 삶의 일상에 지친 어른들에게 딱 맞는 판타지 소설인 듯하다.
삶이 권태롭다고?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그럼, 리처드와 함께 지하세계로 여행을 한번 떠나보는 것은 어떨지? 단, 목숨을 걸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