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날 사랑하지 않아?
클레르 카스티용 지음, 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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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편이다. 영미 문학처럼 무겁지 않고, 일본 문학처럼 가볍지 않다. 대체로 파격적이고, 흥미를 돋운다. 그리고 재미있다. 가끔 이해할 수없는 성性 문화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클레르 카스티용의 책을 읽으면서 아멜리 노통의 독설도 생각해보고, 안 소피 브라슴의 먹고 먹히는 관계의 사랑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상대가 안 된다. 화자인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아고타 크리스토퍼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떠오르고, 성인이 된 후 '나'의 삶을 생각하면 마르셀라 이아쿱의 『사랑하면 죽는다』의 단편들이 떠오른다. 한마디로 파격적이고, 기이한 괴물의 탄생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정신병자? 스토커? 그것도 아니면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미래? 옮긴이는 그런 의구심으로 이 책을 읽으면 많은 것을 놓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맞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어쩌고 하다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모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한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엔 반드시 가정환경과 부모의 소양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편들처럼 하나씩 짧은 이야기들로 이어가는 '나'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늘 예상과 어긋난다. 처음 부모의 생활을 엿보듯이 이야기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나'는 일상적인 삶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가질 생각도 없고, 반성은커녕 후회도 없다. 그냥 자신의 생각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행동한다. 그런 그의 인간성은 아버지에게 큰소리치며 살지만 늘 떠나버릴까 불안해하며 사는 엄마의 그 짜증나면서도 슬픈 넋두리를 들으며 자라는 아들로, 좋아하는 여자에게 제대로 표현을 못하고 겁을 줘버리고선 그게 그의 사랑 방식이라고 믿어버리는 청년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자를 이용하고, 이용하고, 끝까지 이용하는 파렴치한 남편으로 살면서 그 악함을 내보인다. 하나씩 떼어서 보면 어딘가에 한 명씩은 있을 법한 인간이 마치 실험이라도 하는 듯 '나'의 머릿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작가는 정말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지켜야 할 가치와 윤리, 감정이라고 하는 것의 근거를 껍질을 벗겨버리듯 박탈해버렸을 때 삶이 어떤 양상을 띨 수 있는 지"를 알기 위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낸 것일까?

'나'는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악한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살인을 하고, 매춘을 강요하고, 끝없는 스토킹에, 유아방기, 강간까지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지르고 산다. 그럼에도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아니, 그는 못.한.다. 그래서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행동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지만 또 한 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한다. 철저하게 소설 속 화자가 되어 그를 따라간다면 말이다. 작가가 이야기 했다. "(…)그는 내가 닫고 싶지 않은 어떤 문을 내 안에 열어주지요. 검은 문을…… 나는 유채색만 보고 싶지는 않아요.(…)" 세상 안에 속하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저 혼자 세상 밖에 내팽개쳐져 있는 '나'의 모습은 끔찍한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그런데 자꾸만 그의 삶이 가여워지는 것은 또 왜일까?

책을 읽다보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 부분이 한군데라도 있다면 그 책은 내게 있어서 성공한 책이다. 아무리 불편하고 기괴하고 찌질하다해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거다. 왜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지?

<어렸을 적 나는 가족과 일과 타인에 대해 배웠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어린아이를 죽이고 어른이 되었지만, 영혼은 길을 잃고 말았다. 내 영혼은 아주 먼 곳, 어둠의 세계에서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p226

삼십오 년이라는 악순환의 세월을 마무리 짓듯 '나'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그가 내뱉는 독백은 결국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방에 갇혀 살아온 한 남자의 삶을 이해하게 만든다. 유년기와 성인의 시기를 건너뛴 채 노년기에 이른 그가, 방구석에 널린 장난감을 만지면서 칠십 년 동안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하는 꿈을 꾸고, 무엇보다 바라는 건 배를 깔고 엎드려 두 주먹을 배꼽에 대고 웅크린 채 땅속에 묻히는 것이라고 내뱉는 그 모습에서 말이다. 클레르 카스티용, 그 누구의 소설보다 악한 인간이 나오지만 그의 문체, 독설, 세상을 보는 시선들이 자꾸만 궁금해진다. 불편해! 불편해! 소리를 지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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