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영화를 만나다
이철승 지음 / 쿠오레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여행에 관심이 많은 나는 『길에서 영화를 만나다』를 보는 순간 와! 소리를 질렀다. 여행 책이 아니라 영화에 관련된 책인데 뭔 소리까지 지르느냐 하겠지만 제목에서 보이듯 이 책은 길에서 만난 영화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영화보다 책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늘 책보다 영화가 우선이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가 한때는 꽤 영화광이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영화보기를 책읽기보다 좋아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화보다 책을 더 많이 읽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신작이 개봉되면 시간이 있어도 잘 보러가지 않았고, 못 봐서 친구들 이야기에 끼지 못하면 그제야 보겠다고 설치거나 빌려보거나 아니면 다운을 받아 대충 보았다. 아무튼,

이 책은 할리우드가 있고, 많은 배우들이 살고 있으며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촬영들로 북적될 영화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 얽힌 영화이야기다. 블록버스터에서부터 비주류 영화까지 다채롭다. 그곳에서 십 년 넘게 살면서 영화 공부를 하고, 영화와 관련된 글을 올렸던 저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인 LA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영화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친구에게 영화에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씩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친구의 수다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영화로 철학을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모르는 예술 영화를 이야기해서 주눅들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한번쯤은 다들 본 영화와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배우들이 나오고, 그 영화들과 LA에 얽힌 이야기를 장소와 배경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한다. 내가 이 책을 받고 좋아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LA의 거리 곳곳이 나온다. 저자가 사는 동네이니 딱 내가 원하는 여행 컨셉하고도 맞다. 물론 영화에 나온 장소와 거리로 우리를 이끌고 다니지만 그가 그곳에 살지 않으면 꿰뚫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LA에 얽힌 영화이야기를 하지만 LA에 가면 꼭 가고 싶은 곳을 말해주기도 한다.(LA엔 명배우들의 집을 구경할 수 있는 관광 상품이 있단다. 아, 물론 집안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동네 한바퀴다.^^;) 또 하나, 이 책은 읽기가 쉽다. 그동안 영화에 관련된 책을 몇 번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나하고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몇 페이지 읽으면 지겨웠고, 결국 읽다가 집어던진 경우가 더 많았기에 이 책처럼 나를 책 속으로 밀어 넣어 영화에 살짝 불을 지펴준 책은 오랜만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거다.^^

모두 96+α편의 영화를 3부로 나누었는데, 「길」이라는 부제를 달고 중간 중간 나오는 영화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정말 알차다. 영화를 좋아했다고는 하면서도 사실 '깊이'보다는 '넓이'에 더 관심이 많았던 나는 아는 영화는 많은데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해주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내 얕은 영화의 관심을 좀 깊게 만들었다고나 할까?(ㅋ어렵다;;) 하나를 예로 들자면 이런 거다. 이제야 그 진실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이야기였는데 <스파게티 웨스턴>영화라고 불리던 《석양의 무법자》(모르는 사람도 있겠지?)의 배경이 미국 서부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미국 서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하니 이탈리아 서부쯤은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란다. 그 영화의 촬영지는 엉뚱하게도 스페인 알메리아 지방의 사막이라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본 '거기'가 우리가 서 있는 '여기'가 아닌 것이다. 그동안 나는 《석양의 무법자》나 그 비슷한 영화들은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미국 어디쯤이라고 늘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또 뉴욕에 나타난 킹콩은? 과연 뉴욕에서 찍은 걸까? 그렇다면 한국전쟁 때 야전병원을 배경으로 만든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 《매쉬MASH, 1970》에는 한국의 산이 나왔는데, 그 산이 정말 한국의 산을 찍은 것일까? 궁금하면 책을 펼쳐보시길!^^

저자는 '익숙하지 않은 영화'를 익숙한 방식으로 대중들과 교감하고 '익숙한 영화'를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대중들과 바라보는 길을 찾던 마음의 연장선으로 이 책을 준비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과 영화로 '소통'하고 싶다던 바람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나처럼 어려운 영화책에 질렸던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LA라는 도시에 스며든 영화의 흔적과 삶을 찾는 재미가 쏠쏠할 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영화에 관련된 책에 관심이 확 간다. 찜해 놓은 책이 하나 있는데 이 책만큼 잘 읽힌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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